삼평리 가을편지

공지사항 2014. 10. 20. 16:49 |

삼평리 가을편지 


온 동네가 감빛으로 바알갛게 익어가는 시월, 삼평리에서 동무들께 편지를 씁니다. 


<안무받지 않은 춤>

토요일, 건설노조 동지들이 새 농성장 내부 바닥을 깔고 내벽 붙이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노동이 얼마나 창조적이고 아름다운 것인지 오랜만에 느껴 봅니다. 어느 고등학교 봉사활동 동아리 학생들이 할매들 감 따는 일을 돕고 있습니다. 가을 햇살처럼 반짝이는 청소년들의 웃음소리가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습니다. 점심 때가 되자 대구경북 일반노조에서 점심밥을 준비해 주민들과 연대자들의 밥상을 차려줍니다. ‘밥 연대’라는 이름으로 그동안 얼마나 많은 단체, 생협, 노조, 개인들이 삼평리 밥상을 함께 차려주었는지 모릅니다. 

마치 오케스트라처럼, 삼평리 친구들이 우정과 연대의 힘으로 멋진 가을 교향곡을 연주하는 듯합니다. 그 각각의 연주가 자발적인 것이라는 점이 이 연주에 감동을 더합니다. 안무받지 않은 멋진 군무(群舞)!

이렇게 십시일반 보태주시는 힘 덕분에 삼평리는 그동안 꺾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삼평리는 “우리의 투쟁은 계속된다. 우리의 삶도 계속된다. 삼평리에 평화를!”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삼평리 시즌2’를 선언하려고 합니다. 

‘삼평리 시즌 2’는 크게 3대 과제를 설정하고 있습니다. 송전탑 반대 투쟁의 확대, 마을공동체 회복, 법적 대응 등이 그것입니다. 


<송전탑 반대 투쟁의 확대>

한편으로 ‘송전탑 반대 투쟁’을 완강하게 계속하면서, 전국의 탈송전탑-탈핵운동 세력, 여러 피해지역 주민과 연대시민들과 함께하는 투쟁으로 확산시켜갈 것입니다. 밀양 등 다른 송전선로 피해지역 주민들과 연대하여 이미 ‘전국 송전탑 반대 네트워크’(전송넷)를 결성하였습니다. 11월에는 밀양과 청도 삼평리 어르신들이 함께하는 상경투쟁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또 전원개발촉진법, 전기사업법, 송주법 등 소위 3대 에너지 악법을 개정하거나 철폐하는 투쟁을 조직하려고 합니다. 특히 송전탑 반대 투쟁과 탈핵운동이 하나로 이어져,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과 ‘에너지 민주화’를 위한 공동전선을 형성해 나가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투쟁에서 삼평리가 중심적인 역할을 맡게 될 것입니다.    

삼평리 현장에서의 농성 투쟁도 꾸준히, 결연하게 이어갈 것입니다. 아직 전선 작업이 진행중이고 7~8일 간격으로 전선이 추가로 계속 반입되고 있습니다. 또 헐티로와 마을을 건너 22호기와 23호기를 연결하는 대규모 공사 등 예상되는 고비와 쟁점이 무수히 남아 있기 때문에, 아직 공사가 끝났다고 하기엔 이릅니다.  

주민들은 비록 부족한 힘이지만, 부당한 공사를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는 정신으로, 그럴 때마다 온 몸을 던져 싸우고 계십니다. 지난 10월 10일에는 이은주 전 부녀회장이 한전 직원 여러 명에게 떠밀려 다치는 사고까지 있었습니다. 

월요일 이후, 또 전선이 추가로 삼평리에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보통 새벽 5시경부터 오후 2시 정도까지, 여러 차례 충돌이 거듭될 수밖에 없습니다. 할매들 옆에서, 할매들이 다치지 않도록 보호하고, 한전의 부당한 공사에 함께 항의해 줄 연대자들이 필요합니다. 하루 이틀도 좋고, 아예 1주일쯤 붙박이로 와 주시면 더 고맙겠습니다. 

특히 충돌이 발생했을 때 연대자가 부족하면 사진 촬영조차 하지 못 하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그러면 한전 직원이나 경찰들은 주민들을 더 함부로 대하고, 그만큼 더 위험합니다. 함께 자리를 지키고, 소리치고, 기록하고, 알리는 일은 더없이 중요합니다. 함께해 주십시오. 아무리 작은 힘도 삼평리에서는 보석처럼 빛납니다.


<마을공동체 회복>

또 다른 한편으로 ‘마을공동체 회복’의 과제를 안고, ‘국가의 폭력’에 맞서 ‘마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투쟁해온 삼평리를 평화의 마을, 저항의 공동체로 다시 세우기 위한 노력들을 해나갈 것입니다. 

지금 새 농성장을 세우고, 주민들의 농사일을 돕고, 활동가들이 한명 두명 삼평리에 뿌리를 내리면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이 바로 이 과제의 일환들입니다. 내년 봄엔 할매들 집을 수리하고, 담장과 대문도 곱게 다시 칠해 드리고 싶습니다. 오랜 투쟁에서 비롯된 육체적, 정신적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곧 마련될 예정이고요.

중장기적으로는 ‘삼평리 평화센터’를 설립하고자 합니다. 지금은 상주 활동가들의 생활공간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이것을 앞으로 삼평리 마을공동체 활동을 위한 거점으로 세우려고 합니다. 평화센터를 중심으로 마을 안에 사랑방(북카페), 연구소, 공방, 작은도서관 등 새로운 공간들을 하나씩 둘씩 배치해 나가자는 꿈을 갖고 있습니다. 그밖에도 삼평리 평화학교, 장터, 장승제, 인문학캠프, 영화제 등 삼평리 투쟁의 의미를 여러 각도에서 규명하고 계승하기 위한 프로그램들도 하나씩 기획해 나갈 참입니다.  


<법적 대응>

우선은 주민들과 연대자들이 그동안 투쟁 과정에서 업무방해, 집시법 위반 등으로 조사받고 있거나 앞으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게 될 사건들에 대해, 최선을 다해 대응하는 법적 투쟁이 우리 앞에 큰 과제로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나아가, 한전이 그동안 주민들에게 가했던 폭력, 그리고 지난 추석 연휴 때 발생한 ‘돈 봉투’ 사건처럼 불법적으로 조성해 운용해 온 비자금 문제 등에 대해 철저히 수사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도록 하는 것은 비단 삼평리만의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의 정의를 다시 세우는 중요한 투쟁이라고 믿습니다. 

또 경찰이 주민들에게 가했던 모든 폭력과 인권 유린에 대해 사죄하도록 만들고, 주민들에게 끼친 정신적 물질적 고통을 배상하도록 하는 투쟁도 ‘국가폭력’에 맞서는 투쟁으로서 피할 수 없는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상당한 규모의 ‘법률기금’(변호사 수임료, 벌금 등)을 조성해야 할 것입니다. ‘삼평리 법률기금 마련을 위한 후원의 밤’을 2015년 3월 6일(금) 열기로 하고, 10월 말부터 기획팀을 구성하여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려고 합니다. 


삼평리 투쟁의 주인공은 바로 여러분

오는 10월 23일(목) 저녁 7시, 대구 시내 ‘소셜마켓’에서는 ‘삼평리 투쟁 보고회 : 다시 일어서는 삼평리’가 열립니다. 

그동안 연대해주신 동지들, 많은 시민들과 함께 따뜻한 차 한잔 마시면서, 그동안의 노고를 격려하고, 상처를 어루만지는 대화의 자리가 될 것입니다. ‘삼평리 투쟁 보고회’는 무엇보다 앞에서 대강 말씀드린 ‘시즌 2’의 청사진을 함께 그려보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이 자리에는 물론 삼평리 할매들과 주민들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삼평리 투쟁, 그 기적 같은 드라마의 주인공은 놀랄 만큼 다양한 방법으로 연대해 주신 여러분 모두였습니다. 그러니 ‘삼평리 투쟁 보고회’의 주체는 그동안 함께 해주신 여러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또 11월 2일(일)에는 여러 동무들의 힘과 정성으로 새로 세우는 농성장 문을 여는 개장식과 함께 유쾌한 장터 ‘맞장’을 열 계획입니다. 많이 참석해 주시고, 또 ‘삼평리 시즌 2’에서도 변함없이 동무 여러분이 주연을 맡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여러분 한명 한명의 힘이 아니었다면 이 드라마는, 멋진 군무는, 그리고 가을이 깊어가도록 이어지는 교향곡의 연주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서리 내린 삼평리, 단풍처럼 붉은 마음을 전합니다.





Posted by 이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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