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호] 02. 송전탑 반대 운동의 확산과 탈핵 


신고리 3호기 그리고 밀양




김우창(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활동가)




2014년 1월 25일 밀양으로 향하는 2차 희망버스를 탔다. 1박2일의 행사였지만 밀양에서 시간을 보낸 건 24시간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동안 보고 겪은 밀양이 서울촌놈이던 나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지팡이를 짚고 산을 오르는 할머니 세 분을 막기 위해 경찰 수 백 명이 마을의 모든 길을 틀어막았다. 길을 왜 막느냐고, 저 위에서 대체 무슨 공사가 얼마나 어떻게 진행되고 있냐고 물어도 경찰은 묵묵부답이었다. 한전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지만 한전직원은 코빼기도 보지 못했다. 밀양에서 경찰은 마을 주민의 정당한 질문을 막고, 한전의 송전탑 공사를 안전하게 진행시키는 용역이었다. 충직한 용역덕분에 한전은 아무 걱정 없이 제 할 일만 했다.




<사진/김우창>



밀양을 바라보는 언론의 태도도 마찬가지였다. 송전탑 공사를 방해하는 밀양주민들 때문에 전력공급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며 ‘밀양할매’들을 전력대란의 주범으로 몰았다. 그러나 진실은 따로 있었다. 신고리 3호기는 UAE 원전의 모델로 원전 수출 당시 신고리 3호기를 2015년 9월까지 가동해 안전성을 입증한다는 조건을 달았는데, 이를 지키지 못하면 페널티를 물기로 한 것이다. 전력대란의 주범은 어느새 언론에서 사라지고 ‘밀양할매’들은 수출성공과 국익을 저해하는 이기적인 집단으로 덧칠됐다. 이렇듯 거짓과 속임수가 난무했지만 송전탑 공사는 계속되었다. 2014년 6월 11일 한전은 경찰과 공무원 3000여 명을 앞세워 ‘그저 평화롭게 살고 싶다’고 외치던 할매들의 바람을 끝내 짓밟았다.



할매들은 사람들 앞에서 송전탑 이야기만을 하지 않는다. 송전탑 공사로 인해 살기 좋았던 마을과 논밭이 파괴되고 가족 같았던 주민들이 분열된 이야기를 하면서도 ‘탈핵’을 더욱 힘주어 말했다. 처음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송전탑 공사의 부당성과 폭력성만을 설명하면 될 텐데, 왜 저런 이야기까지 하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그만큼 나에게 있어서 핵발전소는 송전탑과 별개의 사안이었다. 그러나 할매들이 옳았다. 여기에선 보이지 않는 고리의 핵발전소가 밀양의 송전탑과 이어져 있었던 것이다. 밀양과 청도를 지나는 송전탑이 신고리 3호기에서 생산한 전기를 북경남변전소까지 실어 나르는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의 희생 없이는 지속될 수 없는 그런 구조 속에서 당신과 내가 살고 있다. 결국 밀양과 청도의 할매들은 희생양이 되었다. 정부와 한전은 신고리 3호기의 수출성공과 경제성장을 위해 할매들의 희생을 당연한 것처럼 말했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 국가의 발전을 위해 꼴짝에 사는 노인들의 희생을 누군가 그렇게 불렀다.





<사진/김우창>



할매들의 희생으로 세워진 송전탑과 신고리 3호기 발전소. 그곳을 2015년 3월 25일 탈탈원정대의 세 번째 기행 때 보고 왔다. 함께 갔던 동래할머니는 신고리 3호기와 연결된 송전탑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중에서도 신고리 3호기에서 시작되어 밀양과 청도를 지나 북경남 변전소로 가는 161개 송전탑 중 1번 송전탑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었다. 할머니에게 신고리 발전소를 직접 보니 어떠냐고 여쭤봤다. “화가 날 줄 알았지. 천불이 날 줄 알았어. 저 신고리 3호기 때문에 우리가 지난 10년을 어떻게 살아왔는데... 근데 화가 나기보단 허무해. 밀양을 지나는 송전탑을 우리만 막는다고 해서 막아질 일이 아니었잖아. 고리에선 핵발전소가 이렇게 늘어나고 있는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기운을 잃지 않는 동래할머니의 입에서 허무란 단어가 나와서 놀랐다. 그러나 할머니가 느낀 허무는 패배감이나 무기력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 큰 싸움을 준비하는 사람의 결연한 태도처럼 느껴졌다. 동래할머니는 “송전탑뿐만 아니라 핵발전소를 막아야 후손에게 덜 부끄러울 것 같아. 지금까지는 탈핵을 별 생각 없이 외쳤는데, 앞으로는 더 열심히 싸워야 될 것 같네.”라고 하셨다.


그날 우리가 보고 온 신고리 3호기의 운영허가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밀양에서 송전탑 공사가 지연되면 전력공급에 차질이 생긴다는 이유로 공권력을 투입해 공사를 강행했지만 신고리 3호기는 지금도 돌아가지 않는다. 지난 10년 동안 대화할 시간이 있었음에도 백지화, 지중화를 요구하는 밀양의 요구를 돈과 시간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무시했다. 사람의 목숨보다 더 귀한 것이 어디 있는가. 인간의 풍요로운 삶을 위해 생산하는 전기가 오히려 인간을 죽이고 있는데 말이다.


2015년 4월 23일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신고리 3호기 운영허가를 위해 연 회의에 할매들과 함께 방청했다. 그날 원안위는 ‘일부의 제품에 문제가 있어서 교체한 후에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몇몇의 원안위 의원들은 “먼저 운영허가를 통과시키고 나중에 교체해도 되지 않냐”고 말하기까지 했다. 누군가의 삶을 망가뜨리는 송전탑, 발전소 등 중요한 전력정책을 심의하고 결정하는 전문가들의 수준이 그랬다. 그런 전문가에게 우리의 미래를 맡겨서는 안 되는 또 하나의 이유를 확신한 순간이었다. 10년간 싸워왔지만 앞으로도 할매들과 해야 할 일이 참 많을 것 같다. 나를 비롯한 밀양 할매들의 싸움은 앞으로도 길고 힘들 것이다. 그러나 그 싸움은 나만을 위한 투쟁이 아니다. 탈핵, 탈송전탑이라는 당신과 우리 모두를 위한 이유 있는 싸움이다. 지금까지도 많은 관심과 응원을 주었던 당신이지만, 앞으로도 변함없는 지지와 연대를 부탁드린다. 탈(핵) 탈(송전탑) 원정대의 여정은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기에.





Posted by 이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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