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호] 법적대응


노역형을 결의하며



윤일규(목사, 대구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작년 여름 우리들은 삼평리 할머니들의 삶과 그 기억들, 그리고 우리들 모두의 미래와 희망을 지켜내기 위한 처절한 투쟁을 하였습니다.

살갗이 검게 타 익어가는 뜨거운 태양빛 아래, 우리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함께 울고 웃었습니다. 그리고 핵 발전과 폭력적인 송전탑 건설이 중단되고, 착한 전기가 실현되는 희망의 상상들을 노래하였습니다. 너무도 힘겨웠던 그 순간이었지만 우리들 모두에게 고통스러웠던 시간이기보다는, 오히려 우리들 삶의 기쁨이 되었고 희망의 원천이 되었던 소중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송전탑을 막아내겠다며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으신 할머니들이 안 계셨다면, 우리들은 어쩌면 생전에 만나지도 못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할머니들은 삼평리를 찾아주시는 많은 분들을 따스한 사랑으로 맞아 주셨고, 많은 분들이 할머니들의 투쟁에 힘을 보태기 위해 현장을 찾아 연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매일 계속된 소중한 밥 연대는 우리들의 마음에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렇기에 할머니들과 맺어졌던 이 인연이 우리들 모두에게 너무도 소중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집니다. 


매일 한전 직원들과 경찰들에 의해 사지가 들려서 끌려 나오셨고 온 몸이 상처를 입었음에도,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다시 공사장 정문을 막아서고 굳게 지키셨던 할머니들이셨습니다. 

그렇게 삼평리의 할머니들은 우리에게 새로운 삶, 새로운 투쟁을 몸소 보여 주신 선각자이셨습니다. 또한 이 시대를 향해서 엄하게 꾸짖으시고 나태해지려는 우리 자신들을 깨우는 예언자들이셨습니다. 할머니들이 마을을 지켜내기 위한 생존권 투쟁을 넘어서서, 탈핵과 생명의 가치를 역설하실 때는 할머니들이 정말 존경스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할머니들을 바라보면서 과연 저러한 힘들이 어디서 나올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 들었습니다. 평생 동안 땅을 일구고 생명을 키워 낸 농부들의 생명에 대한 사랑과 헌신이 그 밑바탕이고 힘이리라 생각 듭니다. 

이러한 할머니들을 바라보면서, 어느 날 할머니들이 너무도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았었습니다. 일생동안 뙤약볕 아래에서 자식들을 위해 농사를 수고스레 지으시며 검게 그을린 얼굴들, 이제 그 몸마저 쇠약해져 구부러지고 그 손과 얼굴에 주름과 검버섯이 가득한 할머니들의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우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 동안 국가와 자본은 우리를 착한 백성(?)이 되기를 강요하여 왔습니다. 그들이 하는 것은 모두가 국가와 공동체를 위해 선한 것임을 강요하고, 그들이 바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당연히 도와야 한다고 해 왔습니다. 그것이 나라 사랑이라 생각했지요. 송전탑 공사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여름 자본과 국가의 탐욕이라는 이름의 민낯을 목격하였습니다. 그들은 평화로웠던 삼평리 마을 공동체를 처참히 파괴시켰습니다. 우리들의 마을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울타리를 쳐 놓고 울타리 밖으로 우리들을 내쳤습니다. 그리고 처참하게 우리들을 폭력으로 짓밟았습니다. 송전탑이 건설된 후 송전선 아래에서 고통스럽게 살아가야 할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관심은 그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시대에 어떠한 삶을 살아내야 할까요?


오늘날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들에 공명하지 못한 채 자기중심주의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저 자신 또한 삼평리에 함께 하면서도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 있었음을 기억합니다. 작년 할머니들의 소중한 삶의 기억이 알알이 맺혀있는 땅과 그 희망들이 그렇게도 처참하게 짓밟혀 나갔으며, 이름 없는 풀과 꽃들, 아름다운 은사시나무 숲이 밟히고 잘려 나가며 고통스러워했습니다. 또한 엄청난 헬기 소음으로 소가 유산되어 소중한 생명이 죽어 나가기도 하였고, 함께 했던 수많은 분들이 몸과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이러한 모든 순간에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했던 저 자신의 연약했던 모습을 상기하며 다시금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어쩌면 지금은 오히려 두 발자국 뒤로 물러서서 방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 들게 되어 착잡한 마음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과연 저 자신은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을 걸어왔나 되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 자신 또한 탐욕의 덩어리였음을 직시합니다. 삼평리를 잊어버리고 저 자신에게로만 매몰된 채 살아가는 나를 목도하며, 더욱 안타까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업무방해로 기소되어 법적 투쟁을 진행하면서도, 좀 더 기민하게 깨어 대응하지 못했던 저 자신을 기억하고 다시금 반성하게 됩니다. 


이 우주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은 깊은 관계의 망으로 서로 단단히 연결되어져 있습니다.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을 걸어가야 할 우리는 이 사실을 다시 깊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내가 다른 이들 안에 있고, 다른 이들이 내 안에 있음을 말입니다. 다른 이들의 고통과 죽음이 바로 나의 아픔이요, 죽음임을 우리는 깊이 자각하여야 할 것입니다. 

다른 이들의 이야기가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 바로 나의 이야기임을 느끼고 공명하여야 할 것입니다. 다른 어떠한 것이 아니라, 바로 이것이 우리를 참 생명의 길, 진리의 길로 이끌 것입니다. 


우리들의 뜨거운 투쟁이 있었음에도, 끝내 송전탑 건설을 막아내지 못하는 우리들의 약함에 슬픔과 자괴감이 있었습니다. 민중사에서 과연 민중이 승리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을까 하는 슬픔 말입니다. 

하지만 할머니들은 여전히 농성장을 든든히 지키고 계십니다. 어떤 활동가는 마을에 상주하면서 할머니들과 삶을 함께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여전히 삼평리 투쟁 시즌 2를 오늘도 살아내며 송전탑 투쟁을 하고 계십니다.  

저는 얼마 전 밀양 투쟁에 함께하셨던 분들이 노역형을 결의하고, 쓰신 글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법원의 판결에 대해 노역형을 결의하면서까지 저항하시려는 모습들을 보며, 그 분들의 모습에 크게 감동했고 눈물이 났었습니다. 다시금 삼평리를 떠 올리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법원의 1심 판결이 끝나고 저 또한 작으나마 실천이 필요함을 느꼈습니다. 저도 그러한 분들의 결의를 이어가기 위해서 작으나마 노역형을 살기로 결의했습니다. 

절망하지 말고 이제 다시 생명의 길, 진리의 길을 걸어내야 한다고 다시금 저 자신을 채찍질해야 함을 느낍니다. 


우리는 결코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되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시대를 거슬러, 새롭게 용솟는 생명의 기운을 튀우는 일들을 해 내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것입니다. 


이제 생명의 길, 진리의 길에 굳게 서지 못했던 저 자신을 다시 깨우치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그 자리에 서려고 합니다. 다시 삼평리의 할머니들과 생명들에게 작은 마음이나마 모아 보려고 합니다. 

여러분들도 다시 삼평리를 기억해 주십시오. 삼평리에 다시 마음을 모아 주시고, 함께 해 주십시오. 삼평리와 밀양의 이야기들을 다시금 우리들의 이야기로 함께 만들어 가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들 자신의 이야기로 응답하게 될 때 이 속에서 무한한 힘과 생명이 솟아나 이 우주로 뻗어 나가게 될 것입니다. 

세상이 가려 하지 않는 이 좁은 길을 가는 것이 너무도 힘들고 어렵지만 이 길은 우리를 진리와 생명으로 이끌 것입니다. 이 길을 걷는 우리 모두가 이 세상을 밝히는 희망의 불꽃들이 되어질 것입니다. 그 희망을 품고 힘차게 다시 나아갑시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서로 손을 잡아 주십시오. 모든 생명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세요. 함께 공명해 주십시오. 그런 우리들에게 새 세상은 반드시 열리게 될 것입니다. 


  삼평리와 밀양의 할머니들과 주민 분들의 몸과 마음에 깊이 새겨졌을 그 상처들을 생각하면 여전히 마음이 아픕니다. 언제쯤 그 상처들이 회복될 수 있을까하고 걱정됩니다. 이 상처들이 치유되고 모두 다시 일어서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삼평리와 밀양의 마을들이 이 아픔의 상처들을 딛고, 다시 더 깊은 관계의 마을 공동체로 회복되어질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그리고 함께하는 우리 모두에게 진리와 생명과 평화가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Posted by 이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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