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호-창간사] 


더 너른 연대를 소망합니다. 



성빛나(민주노총 경주지부 조직2부장)


[편집자주] 성빛나씨는 현재 민주노총 경주지부에서일하고 있다. 빛나씨에게 창간사를 부탁한 이유는 그가 삼평리의 많은 이바구를 만들어 낸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2014년 7월 21일, 갑작스레 공사가 강행된 지 얼마나 지난 뒤였을까. 우리는 공사장 앞에서 비가오나, 바람이 부나 촛불집회를 열었고 그 집회의 이름을 '삼평리 이바구'라 불렀다. 빛나씨는 '삼평리 이바구'를 매일 준비하고 사회를 보았다. 촛불집회에서 뉴스레터까지 이어지는 '삼평리 이바구'는 빛나씨에겐 조금 다른 의미가 있지 않을까. 




- 매일 저녁 7시 30분, 공사장 정문앞에서 진행되었던 삼평리이바구 웹포스터




- 2014년 8월 1일, 삼평리 이바구 사회를 보고있는 성빛나씨 




보나씨로부터 <삼평리 이바구> 뉴스레터 창간사를 부탁받은 뒤 지난 며칠동안 삼평리를 생각해보았습니다.



한여름 날씨에 먼지를 뒤집어쓰며 경찰, 한전직원들과 전쟁같은 날들을 보냈던 기억보다 어쩐지 물안개가 피어오르던 삼평리의 고요한 아침풍경이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농성장에서 먹었던 나물비빔밥에 자작하게 지진 된장찌개도 생각났습니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작고 사소한 기억들이 있습니다.



커다란 챙이 달린 모자를 작은 단추로 아기자기하게 수선해서 쓰고 다니셨던 이어댁할머니. 사이좋은 사슴벌레 한 쌍을 미소 띤 얼굴로 물끄러미 바라보시던 나동댁할머니. 단발머리를 짧게 자르고 뽀글머리 파마한 게 어쩐지 쑥스러워 보이던 월배댁할머니. 웃을 때 반달눈이 되는 천사 같은 석동댁 할머니. 시장에서 물고기 판 실력이 고스란히 입담으로 나오셨던 부산댁 할머니. 대식구 뒷바라지에 청춘을 보냈던 그 한들을 쏟아내기라도 하듯 노랫자락 뽑아내시던 가촌댁 할머니. 몸살인 상태로도 땀을 뻘뻘 흘리며 이어댁할머니 양파밭일을 도왔던 이은주 전 부녀회장님...



핵발전소를 막아내고 핵마피아를 몰아내자는 투쟁의 의미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실은 저의 마음속에는 이런 작은 듯 사소해보이는 풍경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켜내지 못했던 잔인한 나날들이 계속되었지요. 온몸을 다해 공사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깁스를 하고도 계속 꿋꿋한 얼굴로 투쟁을 이어나가셨던 소골댁할머니, 실신해 응급실에 실려가면서도 "우리 아들은 알면 안 된다"며 우시던 석동댁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필사적인 고투에도 불가항력인 양 송전탑이 서서히 올라갈 즈음, "저것만 보면 눈에 가시가 들어간 것 같이 아파."하고 중얼거리던 이어댁할머니가 있었습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눈물 젖은 목소리로 송전탑 앞에 울러 퍼지던 ‘고향의 봄’이 있었습니다.


- 2014년 8월 1일 진행된 삼평리 이바구


연일 할머니들은 병원에 실려갔고, 공사를 저지하기 위한 인원은 경찰과 한전 직원의 수에 비해 턱없이 적었습니다. ‘공사를 끝내 막을 수는 없는 것일까’라는 무기력과 할머니들에 대한 걱정으로 우리의 투쟁이 기로에 놓였던 때이지요. 이를 극복할 수 있었던 건 ‘연대해줘서 고맙다’며 ‘끝까지 싸우겠다’는 할머니들 덕분이었습니다. 투쟁의 동력이 너무도 굳건했던 것입니다. 또한 수많은 동지들의 연대는 투쟁의 자양분이었습니다. 온몸으로 공사를 저지하느라 연행되기 일쑤였던 연대동지들과 매일 농성장 앞에 솥을 걸고 밥 연대를 해주셨던 수많은 연대단위들이 있었습니다. 종교단체에서는 기도회와 미사로써, 예술가들은 공연으로 투쟁에 함께 했고 삼평리 소식을 세상에 알려내고 소중한 기록으로 남겨준 기자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연대자들과 함께, 최선을 다해 싸우자’는 마음으로 매일 저녁 삼평리에 연대오는 동지들과 공사장 앞에서 촛불을 켜고 삼평리 소식을 공유하고 연대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삼평리 이바구>를 열게 됐습니다.



아직, 투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여름, 삼평리의 낮과 밤에 함께했던 수많은 연대자들이 공안탄압에 의해 붙잡혀가고 실형을 선고받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6월 9일 최창진동지가 ‘공무집행방해방해’혐의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구속됐습니다. 이 동지에 대한 구속선고는 민중생존권, 민주주의에 대한 사망선고이며 공안탄압이자 국가폭력입니다. 저들은 그러나 핵마피아에 맞서 마을 공동체와 평화를 지키고자 하는 우리의 마음까지 가둘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 마음들을 나누던 자리가 공사장 앞 촛불을 태우던 <삼평리 이바구>에서, 이제 온라인 뉴스레터 <삼평리 이바구>로 옮겨갑니다. 더 너른 연대를 소망해봅니다.

Posted by 이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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