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호] 법적대응


노역형을 결의하며



윤일규(목사, 대구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작년 여름 우리들은 삼평리 할머니들의 삶과 그 기억들, 그리고 우리들 모두의 미래와 희망을 지켜내기 위한 처절한 투쟁을 하였습니다.

살갗이 검게 타 익어가는 뜨거운 태양빛 아래, 우리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함께 울고 웃었습니다. 그리고 핵 발전과 폭력적인 송전탑 건설이 중단되고, 착한 전기가 실현되는 희망의 상상들을 노래하였습니다. 너무도 힘겨웠던 그 순간이었지만 우리들 모두에게 고통스러웠던 시간이기보다는, 오히려 우리들 삶의 기쁨이 되었고 희망의 원천이 되었던 소중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송전탑을 막아내겠다며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으신 할머니들이 안 계셨다면, 우리들은 어쩌면 생전에 만나지도 못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할머니들은 삼평리를 찾아주시는 많은 분들을 따스한 사랑으로 맞아 주셨고, 많은 분들이 할머니들의 투쟁에 힘을 보태기 위해 현장을 찾아 연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매일 계속된 소중한 밥 연대는 우리들의 마음에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렇기에 할머니들과 맺어졌던 이 인연이 우리들 모두에게 너무도 소중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집니다. 


매일 한전 직원들과 경찰들에 의해 사지가 들려서 끌려 나오셨고 온 몸이 상처를 입었음에도,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다시 공사장 정문을 막아서고 굳게 지키셨던 할머니들이셨습니다. 

그렇게 삼평리의 할머니들은 우리에게 새로운 삶, 새로운 투쟁을 몸소 보여 주신 선각자이셨습니다. 또한 이 시대를 향해서 엄하게 꾸짖으시고 나태해지려는 우리 자신들을 깨우는 예언자들이셨습니다. 할머니들이 마을을 지켜내기 위한 생존권 투쟁을 넘어서서, 탈핵과 생명의 가치를 역설하실 때는 할머니들이 정말 존경스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할머니들을 바라보면서 과연 저러한 힘들이 어디서 나올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 들었습니다. 평생 동안 땅을 일구고 생명을 키워 낸 농부들의 생명에 대한 사랑과 헌신이 그 밑바탕이고 힘이리라 생각 듭니다. 

이러한 할머니들을 바라보면서, 어느 날 할머니들이 너무도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았었습니다. 일생동안 뙤약볕 아래에서 자식들을 위해 농사를 수고스레 지으시며 검게 그을린 얼굴들, 이제 그 몸마저 쇠약해져 구부러지고 그 손과 얼굴에 주름과 검버섯이 가득한 할머니들의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우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 동안 국가와 자본은 우리를 착한 백성(?)이 되기를 강요하여 왔습니다. 그들이 하는 것은 모두가 국가와 공동체를 위해 선한 것임을 강요하고, 그들이 바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당연히 도와야 한다고 해 왔습니다. 그것이 나라 사랑이라 생각했지요. 송전탑 공사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여름 자본과 국가의 탐욕이라는 이름의 민낯을 목격하였습니다. 그들은 평화로웠던 삼평리 마을 공동체를 처참히 파괴시켰습니다. 우리들의 마을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울타리를 쳐 놓고 울타리 밖으로 우리들을 내쳤습니다. 그리고 처참하게 우리들을 폭력으로 짓밟았습니다. 송전탑이 건설된 후 송전선 아래에서 고통스럽게 살아가야 할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관심은 그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시대에 어떠한 삶을 살아내야 할까요?


오늘날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들에 공명하지 못한 채 자기중심주의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저 자신 또한 삼평리에 함께 하면서도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 있었음을 기억합니다. 작년 할머니들의 소중한 삶의 기억이 알알이 맺혀있는 땅과 그 희망들이 그렇게도 처참하게 짓밟혀 나갔으며, 이름 없는 풀과 꽃들, 아름다운 은사시나무 숲이 밟히고 잘려 나가며 고통스러워했습니다. 또한 엄청난 헬기 소음으로 소가 유산되어 소중한 생명이 죽어 나가기도 하였고, 함께 했던 수많은 분들이 몸과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이러한 모든 순간에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했던 저 자신의 연약했던 모습을 상기하며 다시금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어쩌면 지금은 오히려 두 발자국 뒤로 물러서서 방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 들게 되어 착잡한 마음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과연 저 자신은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을 걸어왔나 되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 자신 또한 탐욕의 덩어리였음을 직시합니다. 삼평리를 잊어버리고 저 자신에게로만 매몰된 채 살아가는 나를 목도하며, 더욱 안타까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업무방해로 기소되어 법적 투쟁을 진행하면서도, 좀 더 기민하게 깨어 대응하지 못했던 저 자신을 기억하고 다시금 반성하게 됩니다. 


이 우주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은 깊은 관계의 망으로 서로 단단히 연결되어져 있습니다.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을 걸어가야 할 우리는 이 사실을 다시 깊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내가 다른 이들 안에 있고, 다른 이들이 내 안에 있음을 말입니다. 다른 이들의 고통과 죽음이 바로 나의 아픔이요, 죽음임을 우리는 깊이 자각하여야 할 것입니다. 

다른 이들의 이야기가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 바로 나의 이야기임을 느끼고 공명하여야 할 것입니다. 다른 어떠한 것이 아니라, 바로 이것이 우리를 참 생명의 길, 진리의 길로 이끌 것입니다. 


우리들의 뜨거운 투쟁이 있었음에도, 끝내 송전탑 건설을 막아내지 못하는 우리들의 약함에 슬픔과 자괴감이 있었습니다. 민중사에서 과연 민중이 승리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을까 하는 슬픔 말입니다. 

하지만 할머니들은 여전히 농성장을 든든히 지키고 계십니다. 어떤 활동가는 마을에 상주하면서 할머니들과 삶을 함께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여전히 삼평리 투쟁 시즌 2를 오늘도 살아내며 송전탑 투쟁을 하고 계십니다.  

저는 얼마 전 밀양 투쟁에 함께하셨던 분들이 노역형을 결의하고, 쓰신 글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법원의 판결에 대해 노역형을 결의하면서까지 저항하시려는 모습들을 보며, 그 분들의 모습에 크게 감동했고 눈물이 났었습니다. 다시금 삼평리를 떠 올리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법원의 1심 판결이 끝나고 저 또한 작으나마 실천이 필요함을 느꼈습니다. 저도 그러한 분들의 결의를 이어가기 위해서 작으나마 노역형을 살기로 결의했습니다. 

절망하지 말고 이제 다시 생명의 길, 진리의 길을 걸어내야 한다고 다시금 저 자신을 채찍질해야 함을 느낍니다. 


우리는 결코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되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시대를 거슬러, 새롭게 용솟는 생명의 기운을 튀우는 일들을 해 내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것입니다. 


이제 생명의 길, 진리의 길에 굳게 서지 못했던 저 자신을 다시 깨우치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그 자리에 서려고 합니다. 다시 삼평리의 할머니들과 생명들에게 작은 마음이나마 모아 보려고 합니다. 

여러분들도 다시 삼평리를 기억해 주십시오. 삼평리에 다시 마음을 모아 주시고, 함께 해 주십시오. 삼평리와 밀양의 이야기들을 다시금 우리들의 이야기로 함께 만들어 가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들 자신의 이야기로 응답하게 될 때 이 속에서 무한한 힘과 생명이 솟아나 이 우주로 뻗어 나가게 될 것입니다. 

세상이 가려 하지 않는 이 좁은 길을 가는 것이 너무도 힘들고 어렵지만 이 길은 우리를 진리와 생명으로 이끌 것입니다. 이 길을 걷는 우리 모두가 이 세상을 밝히는 희망의 불꽃들이 되어질 것입니다. 그 희망을 품고 힘차게 다시 나아갑시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서로 손을 잡아 주십시오. 모든 생명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세요. 함께 공명해 주십시오. 그런 우리들에게 새 세상은 반드시 열리게 될 것입니다. 


  삼평리와 밀양의 할머니들과 주민 분들의 몸과 마음에 깊이 새겨졌을 그 상처들을 생각하면 여전히 마음이 아픕니다. 언제쯤 그 상처들이 회복될 수 있을까하고 걱정됩니다. 이 상처들이 치유되고 모두 다시 일어서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삼평리와 밀양의 마을들이 이 아픔의 상처들을 딛고, 다시 더 깊은 관계의 마을 공동체로 회복되어질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그리고 함께하는 우리 모두에게 진리와 생명과 평화가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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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02. 송전탑 반대 운동의 확산과 탈핵 


신고리 3호기 그리고 밀양




김우창(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활동가)




2014년 1월 25일 밀양으로 향하는 2차 희망버스를 탔다. 1박2일의 행사였지만 밀양에서 시간을 보낸 건 24시간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동안 보고 겪은 밀양이 서울촌놈이던 나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지팡이를 짚고 산을 오르는 할머니 세 분을 막기 위해 경찰 수 백 명이 마을의 모든 길을 틀어막았다. 길을 왜 막느냐고, 저 위에서 대체 무슨 공사가 얼마나 어떻게 진행되고 있냐고 물어도 경찰은 묵묵부답이었다. 한전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지만 한전직원은 코빼기도 보지 못했다. 밀양에서 경찰은 마을 주민의 정당한 질문을 막고, 한전의 송전탑 공사를 안전하게 진행시키는 용역이었다. 충직한 용역덕분에 한전은 아무 걱정 없이 제 할 일만 했다.




<사진/김우창>



밀양을 바라보는 언론의 태도도 마찬가지였다. 송전탑 공사를 방해하는 밀양주민들 때문에 전력공급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며 ‘밀양할매’들을 전력대란의 주범으로 몰았다. 그러나 진실은 따로 있었다. 신고리 3호기는 UAE 원전의 모델로 원전 수출 당시 신고리 3호기를 2015년 9월까지 가동해 안전성을 입증한다는 조건을 달았는데, 이를 지키지 못하면 페널티를 물기로 한 것이다. 전력대란의 주범은 어느새 언론에서 사라지고 ‘밀양할매’들은 수출성공과 국익을 저해하는 이기적인 집단으로 덧칠됐다. 이렇듯 거짓과 속임수가 난무했지만 송전탑 공사는 계속되었다. 2014년 6월 11일 한전은 경찰과 공무원 3000여 명을 앞세워 ‘그저 평화롭게 살고 싶다’고 외치던 할매들의 바람을 끝내 짓밟았다.



할매들은 사람들 앞에서 송전탑 이야기만을 하지 않는다. 송전탑 공사로 인해 살기 좋았던 마을과 논밭이 파괴되고 가족 같았던 주민들이 분열된 이야기를 하면서도 ‘탈핵’을 더욱 힘주어 말했다. 처음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송전탑 공사의 부당성과 폭력성만을 설명하면 될 텐데, 왜 저런 이야기까지 하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그만큼 나에게 있어서 핵발전소는 송전탑과 별개의 사안이었다. 그러나 할매들이 옳았다. 여기에선 보이지 않는 고리의 핵발전소가 밀양의 송전탑과 이어져 있었던 것이다. 밀양과 청도를 지나는 송전탑이 신고리 3호기에서 생산한 전기를 북경남변전소까지 실어 나르는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의 희생 없이는 지속될 수 없는 그런 구조 속에서 당신과 내가 살고 있다. 결국 밀양과 청도의 할매들은 희생양이 되었다. 정부와 한전은 신고리 3호기의 수출성공과 경제성장을 위해 할매들의 희생을 당연한 것처럼 말했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 국가의 발전을 위해 꼴짝에 사는 노인들의 희생을 누군가 그렇게 불렀다.





<사진/김우창>



할매들의 희생으로 세워진 송전탑과 신고리 3호기 발전소. 그곳을 2015년 3월 25일 탈탈원정대의 세 번째 기행 때 보고 왔다. 함께 갔던 동래할머니는 신고리 3호기와 연결된 송전탑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중에서도 신고리 3호기에서 시작되어 밀양과 청도를 지나 북경남 변전소로 가는 161개 송전탑 중 1번 송전탑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었다. 할머니에게 신고리 발전소를 직접 보니 어떠냐고 여쭤봤다. “화가 날 줄 알았지. 천불이 날 줄 알았어. 저 신고리 3호기 때문에 우리가 지난 10년을 어떻게 살아왔는데... 근데 화가 나기보단 허무해. 밀양을 지나는 송전탑을 우리만 막는다고 해서 막아질 일이 아니었잖아. 고리에선 핵발전소가 이렇게 늘어나고 있는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기운을 잃지 않는 동래할머니의 입에서 허무란 단어가 나와서 놀랐다. 그러나 할머니가 느낀 허무는 패배감이나 무기력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 큰 싸움을 준비하는 사람의 결연한 태도처럼 느껴졌다. 동래할머니는 “송전탑뿐만 아니라 핵발전소를 막아야 후손에게 덜 부끄러울 것 같아. 지금까지는 탈핵을 별 생각 없이 외쳤는데, 앞으로는 더 열심히 싸워야 될 것 같네.”라고 하셨다.


그날 우리가 보고 온 신고리 3호기의 운영허가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밀양에서 송전탑 공사가 지연되면 전력공급에 차질이 생긴다는 이유로 공권력을 투입해 공사를 강행했지만 신고리 3호기는 지금도 돌아가지 않는다. 지난 10년 동안 대화할 시간이 있었음에도 백지화, 지중화를 요구하는 밀양의 요구를 돈과 시간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무시했다. 사람의 목숨보다 더 귀한 것이 어디 있는가. 인간의 풍요로운 삶을 위해 생산하는 전기가 오히려 인간을 죽이고 있는데 말이다.


2015년 4월 23일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신고리 3호기 운영허가를 위해 연 회의에 할매들과 함께 방청했다. 그날 원안위는 ‘일부의 제품에 문제가 있어서 교체한 후에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몇몇의 원안위 의원들은 “먼저 운영허가를 통과시키고 나중에 교체해도 되지 않냐”고 말하기까지 했다. 누군가의 삶을 망가뜨리는 송전탑, 발전소 등 중요한 전력정책을 심의하고 결정하는 전문가들의 수준이 그랬다. 그런 전문가에게 우리의 미래를 맡겨서는 안 되는 또 하나의 이유를 확신한 순간이었다. 10년간 싸워왔지만 앞으로도 할매들과 해야 할 일이 참 많을 것 같다. 나를 비롯한 밀양 할매들의 싸움은 앞으로도 길고 힘들 것이다. 그러나 그 싸움은 나만을 위한 투쟁이 아니다. 탈핵, 탈송전탑이라는 당신과 우리 모두를 위한 이유 있는 싸움이다. 지금까지도 많은 관심과 응원을 주었던 당신이지만, 앞으로도 변함없는 지지와 연대를 부탁드린다. 탈(핵) 탈(송전탑) 원정대의 여정은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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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마을소식

나는 왜 휴가를 삼평리로 왔나

 -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박기홍(성서공단노동조합 부위원장)




<사진/박기홍>


휴가로 은둔(?) 하기 좋은 평화센터로 찾아간 다음 날 쌍둥이네 복숭아 농장으로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바쁜 농사철에 한 숨 돌릴 참이면 뻔히 보이는 괴물 같은 송전탑에 부아가 치미는데, 그것도 모자라 송전탑투쟁 중에 정당한 항의방문 건이 주거침입으로 둔갑해서 이은주 전 부녀회장이 검찰 조사를 받는 날이었기에 아니 갈 수가 없었다. 검찰 조사를 받고 온 이은주 전 부녀회장은 아무 일 아닌 것 같이 참을 내놓으시면서 검찰조사의 부당성을 이야기하다 울화가 터져 검사 앞에 울고 말았다고... 


쌍둥이네 복숭아 농장 빈대표는 송전탑 투쟁 때문에 복숭아 농사를 제대로 지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서툰 초보농사꾼을 지나고 야심차게 지어볼 참에 송전탑 반대 투쟁에서 뛰어들게 되면서 주위에서 품앗이가 없었다면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했다. 그러면서 빈대표는 올해는 내 손으로 농사를 잘 짓겠다는 것인데 어김없이 한전의 고소 남발로 주민들을 괴롭히고 있다고 했다. 봉숭아 적과처럼 검찰조사쯤이야 일상이 되어 버린 삼평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적과는 나뭇가지에 너무 많이 달린 어린 열매는 속아내는 일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머리는 굳어지고, 몸은 안 움직이게 되고, 입만 살아 있는 것 같은 나에게는 이번 휴가는 적과와도 같았다. 내가 좋아서 선택했고 그 열정으로 살아왔으며 근데 돌아보니 외롭더라. 의지와 열정만으로 될 것 같았는데 부족하고 나약했더라. 때도 묻고, 경직성은 꼰대로 똬리를 틀고 있더라. 이를 속아내고자 휴가를 떠났고 삼평리를 찾았다.


지난 14년 7월 21일 한전의 기습침탈로 치열하고 비타협적인 투쟁을 보았다. 그 뜨거웠던 여름을 잊을 수가 없다. 특히 상주하면서 하루하루 전투를 느끈히 치러낸 활동가들과 지역투쟁으로 확대해서 지역연대 투쟁의 모범으로 자리매김했다고 자부하고 있다. 


대책위가 결성되었던 평화콘서트 그날의 감막걸리와 풍성하게 준비된 음식에 반했고, 농성장 당번날에 함께 하지 못해 미안했고, 재기발랄하고 상상력이 넘치는 활동가들을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고, 오늘 이렇게 내 집처럼 편안하게 찾아와 놀고, 먹고, 쉴 수 있는 휴가를 이곳에서 맞이할 수 있어서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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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마을소식


2015 생명평화의 초록농활-대구경북 봄농활대 삼평리 다녀오다



민뎅(평화캠프 대구지부 사무처장)




5월 23일부터 25일 2박3일 동안 생명평화의 초록농활! 대구경북지역 참가자는 청도 각북면 삼평리로 봄농활을 다녀왔다. 사실 여행을 갈까, 전부터 이 연휴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나도 봄농활 일정에 함께하게 되었다. 10명의 농활대가 삼평리를 찾았다. 제집 드나들 듯 하던 이들도 꽤 오랜만에 찾아 추억 더듬는 시간이 되기도 했고, 이번이 처음이거나 아직 낯설거나 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번 10명의 사람들은 바로 전 주말엔 모두 잘못된 세상을 바꾸기 위해 기꺼이 용기 내 맞섰던 이들을 만나고 지금의 우리를 생각하기 위한 2015광주역사기행도 함께 다녀온 이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모여 함께 농촌활동을 하고, 송전탑과 삼평리에 대해 나누니 모든 것은 정말 연결되어 이렇게 우리를 또 잇고 이어지게 하는가 싶어 불끈! 해졌다. 



  <사진/민뎅>


  23일 오전 10시에 삼평리 농성장에 도착한 초록농활대는 서로 인사를 나누고, 서로 평등한 관계를 위해 성평등 교육과 성평등 내규에 대해 나누었다. 그러한 연장으로 서로가 희망하는 호칭으로 서로를 부르고, 존댓말을 사용키로 했다. 다양한 매력의 호칭들.. 흰수염, 진구, 매실, 개미, 둘기, 민뎅, 해달, 토끼, 카카오, 영구^^ 그 후 삼평리 미디어팀에서 만든 영상을 보고 삼평리 투쟁을 끈질기고 강하게 이어오신 주민 이은주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상을 보고, 이은주 부녀회장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가가 붉어지고, 몸이 뜨거워졌다. 치열한, 이라고 설명하기엔 모자라지만 그러했던 지난 여름날의 삼평리가 머릿속에 펼쳐졌다. 달궈진(??) 상태로^^ 두 곳으로 나뉘어 복숭아 적과 작업을 했다. 청포도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다양한 크기의 복숭아 열매들 중 상품 가치를 키울 수 있게 정리하는 작업이었는데, 한 나무에 정말 많은 열매들이 열리고, 정말 많은 열매들이 버려져야 한다는 것에 이 작업을 처음 해보는 농활대는 크게 놀랐고, 이른바 ‘복숭권’이라고 떨어지는 복숭아의 생존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며 결국 상품이 될 소수의 복숭아를 위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상품, 가치 등에 대해서도 잠시 이야기를 나누며 또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이렇게 적과 작업은 23일 오후, 24일 오전과 오후, 25일 오전까지 이어져 총 4차례 농촌활동을 함께 했다. 처음 해보는 작업들에 모두 식사 시간만 되면 녹초가 됐지만, 정해진 식사 당번과 교양 세미나 등을 간과하지 않고 함께, 했다. 




<사진/민뎅>


  

  적과 작업을 한 농촌활동 외에 우리가 이번 봄농활에서 한 것들은 첫 날의 성평등 교육 외 두 번의 교양 시간이 있었다. 첫 번째는 탈핵/탈송전탑에 대한 것이었고, 두 번째는 최저임금 1만원에 대한 것이었다. 밀양에 이어 청도에서 탈핵활동가로 함께 연대해온 해달(박인화)이 본인의 투쟁 경험과 함께 이야기해 와닿고 이해하기 쉬웠고, 알바노조 대구지부의 지부장인 영구(김영교)의 “선택 가능”한 삶에 대한 이야기와 최저임금 1만원은 무엇도 사실 선택 가능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져버린 지금 사회에 대한 고민과 그것을 바꿔나가기 위한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단순히 어느 농촌에 농사일을 도우러 온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왜 삼평리에 왔는지- 함께 고민하고 공유하는 시간, 그리고 우리가 생명보다 이윤이 먼저인 지금의 이 문제 많은 사회를 살아간다는 것과 그 안에서 이야기해야할 것들에 대해 나누는 시간... 미흡만 부분들이 있었겠지만, 모든 것이 해소될 수도 없겠지만 이 시간들은 그런 의미의 시간들로 기억된다. 



  그 치열한 삼평리 투쟁의 연대를 기억한다. 한 평생 살아온 마을에서 어느 날 이상한 사람들이 되어버렸을 너무나 작은 수의 할매들을 기억한다. 비록 송전탑들이 세워졌지만, 폭력 속에 세워진 그 괴물과 같은 송전탑에, 기만적인 정부에, 부당한 권력과 자본에 평화의 이름으로 기꺼이 파산을 선고하고,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목소리 내고 거리에 서는 것들이 삼평리를 잊지 않고 삼평리를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각각의 나‧들로서 삼평리를 잊지 않고 이야기해나가는 것, 삼평리만의 문제가 아님을 우리 모두가 알고 껴안은 것. 그것들이 수없이 많은 삼평리들을 잇고 이어갈 평화의 길임을 의심치 않는다. 투쟁도, 연대도, 그리고 우리의 삶도 여전히, 계속될 테니까. “삼평리에 평화를”. 우리 모두의 삶에, 평화를. 



<사진/민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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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마을소식

누구를 위한 주민복지회관인가!

"뭐가 후손들을 위한 길이고!"



변홍철(청도345kV송전탑반대공동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



며칠 전 청도 삼평리 마을회관에서는 소위 '(한전과의) 합의 추진위원'들과 송전탑 반대 주민들(주로 할매들)이 마주 앉았다. 


한전과 '합의 추진위원'들(현직 이장이 포함된 이들은 자신들이 마을 주민 전체를 대의한다고 주장해옴) 사이에 작년 4월 체결되었다고 하는 '합의'에 따라 '주민복지회관' 건립을 추진하고, 이 공사 추진 공정에 따라 한전으로부터 분할하여 '지원금'을 받기로 했으니, 송전탑 반대 주민들도 이에 협조해 달라는 취지의 메시지를 다시 한번 전달하기 위해 이장이 소집한 자리였다. 


한전이 삼평리 주민복지회관 건립에 지원하기로 한 금액은 총 5억 원으로, 밀양(765kV) 구간과는 달리 개별(가구별) 보상이 없는 청도(345kV) 구간에서는 유일하게 한전의 송전탑 공사에 대한 주민 동의(합의)를 확인하고 이에 대해 마을 차원으로 보상하는 공식적인 돈인 셈이다. 이른바 '마을발전기금'의 형식이다. 


그러나 작년 말부터 삼평리 송전탑 반대 주민들과 대책위는 일관되게 주민복지회관 건립 반대의 뜻을 밝혀 왔다. 한전과의 싸움이 자칫 주민들 사이의 갈등으로 전환되는 부담이 없지는 않으나, 적법한 절차를 밟지도 않고 또 주민 동의를 얻지 못한 부당하고 불법적인 송전탑 공사에 대한 면죄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진/변홍철>


또 고령의 주민들이 대부분인 이 동네에서, 이미 있는 마을회관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또 복지회관이라는 이름의 건물을 작은 동네 안에 세우는 것은 여러 의미에서 불합리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쪽에서는 2억 2천만 원의 이행강제금 집행문부여 민사소송으로 송전탑 반대 주민들에게 금전적으로 압박하고 치졸한 보복을 하려고 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주민복지회관 건립 지원이라는 알량한 명목으로 마을에 돈을 지원하는 것은 결국 주민들간의 갈등과 반목만을 심화시켜, 주민간의 화해와 치유, 공동체 회복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처사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한전은 비열하고 기만적이며, 이런 한심한 지원금에 눈이 어두워 자존심을 팔아먹는 '합의 추진위원'들의 행태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이미 한전 지원금으로 부지는 구입해 놨고, 한전한테서 나머지 3억을 더 받기 위해서는 공사를 추진해야 한다. 후손을 생각해 달라"고 어느 추진위원이 할매들한테 요청한 모양이다. 


우리 할매들의 대답. "비록 송전탑이 섰지만, 그래도 우리가 한전한테 치사하게 돈 받았다고 역사에 남기는 것보다는, 송전탑 끝까지 반대하고 동네 지킬라카다가, 한전 지원금도 당당하이 거부했다, 이런 자존심을 남기 주는 기 진짜로 후손들 위한 길 아이가! 그거 한전 돈 몇푼에 마을 팔아묵었다 카는 소리 듣고 싶나!"


밀양에서 개별 보상을 거부하고 있는 세대가 아직도 225세대나 된다. 그리고 청도 삼평리에는 할매들의 이같은 뜻에 밀려 사실상 주민복지회관 건립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것은 한전의 송전탑 공사가 주민 동의를 제대로 받지 못한 부당한 공사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경찰의 폭력 없이는, 또 마을을 분열시키고 주민들을 매수한 검은 돈이 아니었다면, 단 한발짝도 진척될 수 없었던 엉터리 공사였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현재 삼평리 내에는 주민복지회관 건립을 막음으로써, 한전 송전탑 공사의 부당함을 끝끝내 밝혀내고, 저 송전탑을 반드시 뽑아내겠다는 주민들의 투쟁이 조용히, 그러나 끈질기게 진행되고 있다. 


아직도 건재한 농성장이, 그리고 하루도 빠짐 없이 그 농성장에 나와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꽃을 피우는 할매들의 '농성'이 그 조용한 투쟁을 웅변하고 있다. 


우리의 투쟁은 계속된다.

우리의 삶도 계속된다. 

삼평리에 평화를!

Posted by 이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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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평리 농활 


기간

5월 셋째주 ~ 11월 넷째주 


5월~6월 복숭아 사과 열매솎기     6월 양파 수확    7~8월 복숭아 수확

10월 콩 깨 감 수확    11월 사과수확 


준비물 

농활가능한 편안한 복장, 모자, 물병 등 

(장갑은 삼평리에서 준비합니다^^)


신청 및 문의

이은주_마을주민(010-5533-8449) 

Posted by 이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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