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예‘술’제 

- 모든 것은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났다.



박인화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활동가)







삼평리 프로젝트 팀에 대한 이야기는 현순쌤과 민수오빠랑 함께한 술자리에서 처음 들었다. 삼평리에서 만난 사람들이 삼평리의 이야기를 가지고 저항예술제에 참가한다했다. 삼평리에서 만난 사람, 삼평리로 연결되는 사람들이 모여 삼평리의 이야기를 퍼포먼스로 하는 거라 했다. 나는 작년 크리스마스 대백 앞에서 했던 불법인간 팀으로 참가하고 싶었지만 각자의 사정으로 인해 무산됐었다. 솔깃했지만 내가 맡고 있는 일에 대한 집중력과 책임감이 많이 요구되던 때라 현순쌤이 같이 가자고 했을 때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술이 술술 들어가고 오늘이 어제가 됐을 때 쯤 술김에 하겠다 했다. 술 깨고 나서 조금 후회하긴 했지만 어쩌겠나. 이미 하겠다한 걸 주워 담을 수도 없는데.



삼평리프로젝트 팀은 사부작에서 처음 모였다. 각자가 표현하고 싶은 삼평리의 이미지를 나누고, 삼평리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 했다. 우리는 삼평리 할매들의 얼굴을 하고 농성장 뒤편에 꽂힌 송전탑을 어깨에 메고 우리가 그렇게 지키고자 한 삼평리 평화공원을 따라 활짝 핀 접시꽃을 손에 들기로 했다. 정해진 퍼포먼스를 하는 것이 아니라 걸어다니고 밥을 먹고 앉아 쉬고 대화를 나누고 숨을 쉬는 것 조차도 퍼포먼스라 생각하기로 했다. 탈은 찰흙으로 본을 떠서 석고나 종이로 만들기로 했다. 근데 어깨에 멜 송전탑을 어떻게 구현해낼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하루 종일 메고 다녀야하는데 무거워도, 쉽게 부러져도 안되기 때문에 어떤 재질로 만들어야 할지 너무 고민스러웠다.



-2015저항예술제에 참가한 '삼평리 프로젝트팀'



작년과 마찬가지로 생일은 삼평리와 함께했다. 작년엔 도청에서 치킨먹고 다음날에 도자사한테 생일 빵을 맞았는데 올해는 도도에서 종일 탈과 송전탑, 접시꽃을 만들었다. 탈은 쓱싹하고 빚으니 뚝딱하고 나왔고 접시꽃도 철사를 요리조리하니 틀이 만들어졌다. 문제는 송전탑이었다. 처음엔 죽부인 대나무를 구해 만들기로 했는데 부러질 위험도 있고 구하기 힘들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고추가 자랄 때 지지해주는 고추대로 송전탑을 만들었다. 무게도 가볍고 휘지도 부러지지도 않는다는 장점이 있었다. 민수오빠는 사일 밤낮으로 송전탑을 만들었다. 도와주고 싶었지만 민수오빠가 잘 하길래 마음만 보탰다. 저항예술제 전날 새벽까지 열심히 만들더라. 내가 마음을 보태서 잘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저항예술제가 열리는 성남 하수종말처리장 오리공원에 갔다. 하수종말처리장답게 분위기가 스산했다. 우리가 조금 일찍 도착해서 그런지 준비가 조금 덜 되 있었다. 실어온 송전탑을 마저 조립하고 장소를 둘러봤다. 저항예술제 플랑이 입구에 걸려있고 저항하고 있는 지역의 메시지가 담긴 플랑이 쭉 걸려 있었다. 저항예술제스럽단 생각과 삼평리의 이야기를 한다고만 했지 나는 저항예술제에 뭘 저항하러 왔는지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저항예술제에 있으면서 생각하기로 했다. 생각하길 저항했다는 것에 잠시 뿌듯했다. 우리는 탈을 쓰고 송전탑을 단단히 메고 곳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공연 하는 곳에 가서 춤도 추고 퍼포먼스도 보고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하기도 했다. 정말로 우리가 즐기고 앉아있고 돌아다니는 것이 퍼포먼스가 되었다. 탈을 쓰고 다니는 것에 어느 정도 적응되니 술이 땡겼다. 주최측에서 나눠준 대안화폐로 맥주를 사먹기 시작했다. 탈 밑으로 빨대를 넣어 쪽쪽 빨아먹으니 한 캔이 금방 동났다. 그렇게 하루 종일 맥주를 마셨다. 공짜 술이라 좋았고 술을 마시는 것 조차 퍼포먼스라 생각하니 더 좋았다. 하루종일 마셨다.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퍼포먼스는 오리공원 입구에 설치된 동상 앞에서 예기플러스 팀이랑 부산 극단에서 걷기 퍼포먼스를 하는 팀이랑 한 퍼포먼스다. 약속된 동작은 하나도 없었다. 그냥 마음이 시키는 대로 몸이 이끄는 대로 퍼포먼스를 하고 합을 맞췄다. 지나가는 사람이 발걸음을 멈춰 짧은 눈길을 주고 다시 떠나도 괜찮았다. 각자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그대로 동상 앞에 가져왔다. 성남시 하수종말처리장 앞 동상이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삼평1리가 되었다. 걸어가는 할매,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할매, 한전 직원들과 싸우는 할매, 꽃을 꺾어주는 할매, 너무 지쳐서 누워있는 할매, 가만히 바라보는 할매. 누군가의 손을 쓰다듬는 할매. 우리는 삼평리 할매가 되었다. 



마지막 공연은 스님한분과 퍼포머 이정훈씨, 예기플러스 팀, 삼평리 프로젝트 팀이 함께 했다. 장소가 좁고 퍼포머가 많아 할 수 있는 게 적었다. 아쉬운 마음에 공연이 끝나고 길바닥에 앉아 남은 저항화폐로 산 맥주를 나눠 마셨다. 1박 2일 저항예술제가 끝났다. 삼평리에서 춤 추기 싫어 삼평리대책위 상황실 일반노조 까지 만들었는데. 내가 사람들 앞에서 삼평리 이야기를 몸짓으로 하다니 놀라웠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춤은 안췄을 것 같지만. 



저항예술제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저항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무엇에 저항했을까. 송전탑을 주민들 동의 없이 국책사업이란 이름으로 막무가내로 세워버리는 정부에 저항했는가. 무력으로 주민들과 연대자들을 제압한 경찰에게 저항했는가. 나는 퍼포먼스를 하면서 무엇에 저항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저 삼평리를 알아달라고. 아직 싸우는 사람이 있다고. 아직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고. 잊혀지는 것에 저항했다. 우리는 싸움이 가열찬 순간에만 그곳에 사람이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한다. 시간이 지나 눈에 보이는 충돌이 사그라들면 너무 쉽게 잊혀진다. 나 또한 삼평리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대구로 돌아와 생활을 할 때 삼평리를 잠시 잊어버린 적이 있다. 바쁘니까, 내 일이 너무 많으니까, 몸이 멀어졌으니까, 누군간 잊지 않고 있겠지란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 있었다. 삼평리 프로젝트 팀을 준비하고 저항예술제에서 퍼포먼스를 하면서 나에게 삼평리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저항예술제 마지막날 맨발로 아스팔트를 걸어다닐 때 그 뜨거운 아스팔트 도로가 생각 났다. 그 열기가 저항의 불씨가 되어 수백명의 연대자와 주민들이 모여 삼평리 송전탑 투쟁했다. 우린 체감온도 50도가 넘는 그 거리에서 춤 추고 노래하고 함께 싸웠다. 누군가는 이미 졌다고 말했지만 아직 지지않았다고 꿋꿋하게 말했었다. 정말 아직 지지않았다. 주민들은 마을복지회관 건립을 막으려고 다시 도로위로 나갔다. 찾아오는 사람 드물고 마을 공동체는 산산조각이 났지만 싸움이 끝나지 않았으니 질 수가 없다. 잊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한 우리의 저항은 계속 될 것이다.



우리의 삶은 계속된다. 우리의 투쟁도 계속된다. 삼평리에 평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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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문부여사건 최종진술


백창욱(청도345kv송전탑반대공동대책위원회 공동대표)



그동안 삼평리 할매들은 세 번의 전쟁을 겪었습니다. 할매들은 3차 대전이라고 말씀합니다. 
첫째는 2012년 7월 23호 송전탑 1차 공사 때 입니다. 한전이 고용한 멧돼지용역들이 할매들에게 반인륜적인 폭력을 가했습니다. 한 예로 용역들은 실신한 이차연할매를 산에서 질질 끌고 내려왔습니다. 게다가 병원에 모셔가기는커녕 방치했습니다. 그 때 일은 할매들에게 깊은 트라우마가 됐습니다.


둘째는 한전이 2014년 7월 21일 삼평리에 새벽침탈한 이후입니다. 
할매들은 송전탑이 세워질 때까지 현장에서 일상을 보내야 했습니다. 편안한 일상이 아니라 매일매일 아수라장 속에 구급차에 실려나가고 인간의 밑바닥을 겪었습니다. 국책사업 미명 하에 공권력과 한전이 합작하여 삼평리를 유린하는 것을 꼼짝없이 지켜봐야 했습니다.
일차 전쟁 트라우마가 치유는커녕 더욱 덧나고 말았습니다.


셋째는 지금 진행중인 전쟁입니다. 
한전이 마을분열책으로 삼평리에 준 돈으로 이장은 투명한 절차없이 복지회관을 지으려고 합니다. 그 돈은 할매들과 주민들이 온 몸으로 반대활동을 한 결과로 다른 마을보다 세 배나 많은 돈입니다. 그러나 이장은 할매들의 고통에 대한 인정과 사과없이 회관을 발주했습니다. 공사업자는 흙차를 막는 할매들에게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폭언을 가했습니다. 
할매들은 지금도 복지회관 터 앞에서 땡볕 아래 돗자리 하나 깔고 동의없이 밀어붙이려는 복지회간 공사를 감시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아무 잘못없는 70-80대 할매들은 한전의 잘못된 일처리로 인해 말년에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으며 하루하루 고단하게 살고 계십니다. 그런데도 한전은 물론이고 이장과 공사업자까지 자기 이익을 얻기 위해 할매들을 끝없이 벼랑으로 몰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할매들은 너무 많은 고통과 댓가를 치뤘습니다. 이미 이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여기에 더 이상 어떤 법적제재를 가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처사입니다. 


마지막으로 실체적 진실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2014년 3월 1일 장승을 세운 일은 삼평리 평화를 갈망하는 하나의 문화행사일 뿐입니다. 도대체 무생물 장승이 무슨 공사방해를 한다는 말인가요? 또한 삼평리 할매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연대한 대책위 일꾼들에게 금전압박을 하는 것은 약자를 돕고 함께 살아야 하는 우리 사회 공동체 가치와 민주주의에도 위배됩니다. 


판사님, 할매들이 지금까지 겪은 참혹한 상황에 대해서 충분히 검토하시어, 한전이 제기한, 실체도 불분명한 이행강제금에 대해서 기각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Posted by 이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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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창간사] 


더 너른 연대를 소망합니다. 



성빛나(민주노총 경주지부 조직2부장)


[편집자주] 성빛나씨는 현재 민주노총 경주지부에서일하고 있다. 빛나씨에게 창간사를 부탁한 이유는 그가 삼평리의 많은 이바구를 만들어 낸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2014년 7월 21일, 갑작스레 공사가 강행된 지 얼마나 지난 뒤였을까. 우리는 공사장 앞에서 비가오나, 바람이 부나 촛불집회를 열었고 그 집회의 이름을 '삼평리 이바구'라 불렀다. 빛나씨는 '삼평리 이바구'를 매일 준비하고 사회를 보았다. 촛불집회에서 뉴스레터까지 이어지는 '삼평리 이바구'는 빛나씨에겐 조금 다른 의미가 있지 않을까. 




- 매일 저녁 7시 30분, 공사장 정문앞에서 진행되었던 삼평리이바구 웹포스터




- 2014년 8월 1일, 삼평리 이바구 사회를 보고있는 성빛나씨 




보나씨로부터 <삼평리 이바구> 뉴스레터 창간사를 부탁받은 뒤 지난 며칠동안 삼평리를 생각해보았습니다.



한여름 날씨에 먼지를 뒤집어쓰며 경찰, 한전직원들과 전쟁같은 날들을 보냈던 기억보다 어쩐지 물안개가 피어오르던 삼평리의 고요한 아침풍경이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농성장에서 먹었던 나물비빔밥에 자작하게 지진 된장찌개도 생각났습니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작고 사소한 기억들이 있습니다.



커다란 챙이 달린 모자를 작은 단추로 아기자기하게 수선해서 쓰고 다니셨던 이어댁할머니. 사이좋은 사슴벌레 한 쌍을 미소 띤 얼굴로 물끄러미 바라보시던 나동댁할머니. 단발머리를 짧게 자르고 뽀글머리 파마한 게 어쩐지 쑥스러워 보이던 월배댁할머니. 웃을 때 반달눈이 되는 천사 같은 석동댁 할머니. 시장에서 물고기 판 실력이 고스란히 입담으로 나오셨던 부산댁 할머니. 대식구 뒷바라지에 청춘을 보냈던 그 한들을 쏟아내기라도 하듯 노랫자락 뽑아내시던 가촌댁 할머니. 몸살인 상태로도 땀을 뻘뻘 흘리며 이어댁할머니 양파밭일을 도왔던 이은주 전 부녀회장님...



핵발전소를 막아내고 핵마피아를 몰아내자는 투쟁의 의미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실은 저의 마음속에는 이런 작은 듯 사소해보이는 풍경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켜내지 못했던 잔인한 나날들이 계속되었지요. 온몸을 다해 공사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깁스를 하고도 계속 꿋꿋한 얼굴로 투쟁을 이어나가셨던 소골댁할머니, 실신해 응급실에 실려가면서도 "우리 아들은 알면 안 된다"며 우시던 석동댁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필사적인 고투에도 불가항력인 양 송전탑이 서서히 올라갈 즈음, "저것만 보면 눈에 가시가 들어간 것 같이 아파."하고 중얼거리던 이어댁할머니가 있었습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눈물 젖은 목소리로 송전탑 앞에 울러 퍼지던 ‘고향의 봄’이 있었습니다.


- 2014년 8월 1일 진행된 삼평리 이바구


연일 할머니들은 병원에 실려갔고, 공사를 저지하기 위한 인원은 경찰과 한전 직원의 수에 비해 턱없이 적었습니다. ‘공사를 끝내 막을 수는 없는 것일까’라는 무기력과 할머니들에 대한 걱정으로 우리의 투쟁이 기로에 놓였던 때이지요. 이를 극복할 수 있었던 건 ‘연대해줘서 고맙다’며 ‘끝까지 싸우겠다’는 할머니들 덕분이었습니다. 투쟁의 동력이 너무도 굳건했던 것입니다. 또한 수많은 동지들의 연대는 투쟁의 자양분이었습니다. 온몸으로 공사를 저지하느라 연행되기 일쑤였던 연대동지들과 매일 농성장 앞에 솥을 걸고 밥 연대를 해주셨던 수많은 연대단위들이 있었습니다. 종교단체에서는 기도회와 미사로써, 예술가들은 공연으로 투쟁에 함께 했고 삼평리 소식을 세상에 알려내고 소중한 기록으로 남겨준 기자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연대자들과 함께, 최선을 다해 싸우자’는 마음으로 매일 저녁 삼평리에 연대오는 동지들과 공사장 앞에서 촛불을 켜고 삼평리 소식을 공유하고 연대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삼평리 이바구>를 열게 됐습니다.



아직, 투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여름, 삼평리의 낮과 밤에 함께했던 수많은 연대자들이 공안탄압에 의해 붙잡혀가고 실형을 선고받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6월 9일 최창진동지가 ‘공무집행방해방해’혐의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구속됐습니다. 이 동지에 대한 구속선고는 민중생존권, 민주주의에 대한 사망선고이며 공안탄압이자 국가폭력입니다. 저들은 그러나 핵마피아에 맞서 마을 공동체와 평화를 지키고자 하는 우리의 마음까지 가둘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 마음들을 나누던 자리가 공사장 앞 촛불을 태우던 <삼평리 이바구>에서, 이제 온라인 뉴스레터 <삼평리 이바구>로 옮겨갑니다. 더 너른 연대를 소망해봅니다.

Posted by 이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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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법적대응


노역형을 결의하며



윤일규(목사, 대구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




작년 여름 우리들은 삼평리 할머니들의 삶과 그 기억들, 그리고 우리들 모두의 미래와 희망을 지켜내기 위한 처절한 투쟁을 하였습니다.

살갗이 검게 타 익어가는 뜨거운 태양빛 아래, 우리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함께 울고 웃었습니다. 그리고 핵 발전과 폭력적인 송전탑 건설이 중단되고, 착한 전기가 실현되는 희망의 상상들을 노래하였습니다. 너무도 힘겨웠던 그 순간이었지만 우리들 모두에게 고통스러웠던 시간이기보다는, 오히려 우리들 삶의 기쁨이 되었고 희망의 원천이 되었던 소중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송전탑을 막아내겠다며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으신 할머니들이 안 계셨다면, 우리들은 어쩌면 생전에 만나지도 못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할머니들은 삼평리를 찾아주시는 많은 분들을 따스한 사랑으로 맞아 주셨고, 많은 분들이 할머니들의 투쟁에 힘을 보태기 위해 현장을 찾아 연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매일 계속된 소중한 밥 연대는 우리들의 마음에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렇기에 할머니들과 맺어졌던 이 인연이 우리들 모두에게 너무도 소중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집니다. 


매일 한전 직원들과 경찰들에 의해 사지가 들려서 끌려 나오셨고 온 몸이 상처를 입었음에도,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다시 공사장 정문을 막아서고 굳게 지키셨던 할머니들이셨습니다. 

그렇게 삼평리의 할머니들은 우리에게 새로운 삶, 새로운 투쟁을 몸소 보여 주신 선각자이셨습니다. 또한 이 시대를 향해서 엄하게 꾸짖으시고 나태해지려는 우리 자신들을 깨우는 예언자들이셨습니다. 할머니들이 마을을 지켜내기 위한 생존권 투쟁을 넘어서서, 탈핵과 생명의 가치를 역설하실 때는 할머니들이 정말 존경스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할머니들을 바라보면서 과연 저러한 힘들이 어디서 나올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 들었습니다. 평생 동안 땅을 일구고 생명을 키워 낸 농부들의 생명에 대한 사랑과 헌신이 그 밑바탕이고 힘이리라 생각 듭니다. 

이러한 할머니들을 바라보면서, 어느 날 할머니들이 너무도 아름답다는 느낌을 받았었습니다. 일생동안 뙤약볕 아래에서 자식들을 위해 농사를 수고스레 지으시며 검게 그을린 얼굴들, 이제 그 몸마저 쇠약해져 구부러지고 그 손과 얼굴에 주름과 검버섯이 가득한 할머니들의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우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 동안 국가와 자본은 우리를 착한 백성(?)이 되기를 강요하여 왔습니다. 그들이 하는 것은 모두가 국가와 공동체를 위해 선한 것임을 강요하고, 그들이 바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당연히 도와야 한다고 해 왔습니다. 그것이 나라 사랑이라 생각했지요. 송전탑 공사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여름 자본과 국가의 탐욕이라는 이름의 민낯을 목격하였습니다. 그들은 평화로웠던 삼평리 마을 공동체를 처참히 파괴시켰습니다. 우리들의 마을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울타리를 쳐 놓고 울타리 밖으로 우리들을 내쳤습니다. 그리고 처참하게 우리들을 폭력으로 짓밟았습니다. 송전탑이 건설된 후 송전선 아래에서 고통스럽게 살아가야 할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관심은 그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시대에 어떠한 삶을 살아내야 할까요?


오늘날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들에 공명하지 못한 채 자기중심주의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저 자신 또한 삼평리에 함께 하면서도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 있었음을 기억합니다. 작년 할머니들의 소중한 삶의 기억이 알알이 맺혀있는 땅과 그 희망들이 그렇게도 처참하게 짓밟혀 나갔으며, 이름 없는 풀과 꽃들, 아름다운 은사시나무 숲이 밟히고 잘려 나가며 고통스러워했습니다. 또한 엄청난 헬기 소음으로 소가 유산되어 소중한 생명이 죽어 나가기도 하였고, 함께 했던 수많은 분들이 몸과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이러한 모든 순간에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했던 저 자신의 연약했던 모습을 상기하며 다시금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어쩌면 지금은 오히려 두 발자국 뒤로 물러서서 방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 들게 되어 착잡한 마음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과연 저 자신은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을 걸어왔나 되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 자신 또한 탐욕의 덩어리였음을 직시합니다. 삼평리를 잊어버리고 저 자신에게로만 매몰된 채 살아가는 나를 목도하며, 더욱 안타까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업무방해로 기소되어 법적 투쟁을 진행하면서도, 좀 더 기민하게 깨어 대응하지 못했던 저 자신을 기억하고 다시금 반성하게 됩니다. 


이 우주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은 깊은 관계의 망으로 서로 단단히 연결되어져 있습니다.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을 걸어가야 할 우리는 이 사실을 다시 깊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내가 다른 이들 안에 있고, 다른 이들이 내 안에 있음을 말입니다. 다른 이들의 고통과 죽음이 바로 나의 아픔이요, 죽음임을 우리는 깊이 자각하여야 할 것입니다. 

다른 이들의 이야기가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 바로 나의 이야기임을 느끼고 공명하여야 할 것입니다. 다른 어떠한 것이 아니라, 바로 이것이 우리를 참 생명의 길, 진리의 길로 이끌 것입니다. 


우리들의 뜨거운 투쟁이 있었음에도, 끝내 송전탑 건설을 막아내지 못하는 우리들의 약함에 슬픔과 자괴감이 있었습니다. 민중사에서 과연 민중이 승리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을까 하는 슬픔 말입니다. 

하지만 할머니들은 여전히 농성장을 든든히 지키고 계십니다. 어떤 활동가는 마을에 상주하면서 할머니들과 삶을 함께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여전히 삼평리 투쟁 시즌 2를 오늘도 살아내며 송전탑 투쟁을 하고 계십니다.  

저는 얼마 전 밀양 투쟁에 함께하셨던 분들이 노역형을 결의하고, 쓰신 글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법원의 판결에 대해 노역형을 결의하면서까지 저항하시려는 모습들을 보며, 그 분들의 모습에 크게 감동했고 눈물이 났었습니다. 다시금 삼평리를 떠 올리게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법원의 1심 판결이 끝나고 저 또한 작으나마 실천이 필요함을 느꼈습니다. 저도 그러한 분들의 결의를 이어가기 위해서 작으나마 노역형을 살기로 결의했습니다. 

절망하지 말고 이제 다시 생명의 길, 진리의 길을 걸어내야 한다고 다시금 저 자신을 채찍질해야 함을 느낍니다. 


우리는 결코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되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시대를 거슬러, 새롭게 용솟는 생명의 기운을 튀우는 일들을 해 내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것입니다. 


이제 생명의 길, 진리의 길에 굳게 서지 못했던 저 자신을 다시 깨우치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그 자리에 서려고 합니다. 다시 삼평리의 할머니들과 생명들에게 작은 마음이나마 모아 보려고 합니다. 

여러분들도 다시 삼평리를 기억해 주십시오. 삼평리에 다시 마음을 모아 주시고, 함께 해 주십시오. 삼평리와 밀양의 이야기들을 다시금 우리들의 이야기로 함께 만들어 가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들 자신의 이야기로 응답하게 될 때 이 속에서 무한한 힘과 생명이 솟아나 이 우주로 뻗어 나가게 될 것입니다. 

세상이 가려 하지 않는 이 좁은 길을 가는 것이 너무도 힘들고 어렵지만 이 길은 우리를 진리와 생명으로 이끌 것입니다. 이 길을 걷는 우리 모두가 이 세상을 밝히는 희망의 불꽃들이 되어질 것입니다. 그 희망을 품고 힘차게 다시 나아갑시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서로 손을 잡아 주십시오. 모든 생명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세요. 함께 공명해 주십시오. 그런 우리들에게 새 세상은 반드시 열리게 될 것입니다. 


  삼평리와 밀양의 할머니들과 주민 분들의 몸과 마음에 깊이 새겨졌을 그 상처들을 생각하면 여전히 마음이 아픕니다. 언제쯤 그 상처들이 회복될 수 있을까하고 걱정됩니다. 이 상처들이 치유되고 모두 다시 일어서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삼평리와 밀양의 마을들이 이 아픔의 상처들을 딛고, 다시 더 깊은 관계의 마을 공동체로 회복되어질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그리고 함께하는 우리 모두에게 진리와 생명과 평화가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Posted by 이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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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02. 송전탑 반대 운동의 확산과 탈핵 


신고리 3호기 그리고 밀양




김우창(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활동가)




2014년 1월 25일 밀양으로 향하는 2차 희망버스를 탔다. 1박2일의 행사였지만 밀양에서 시간을 보낸 건 24시간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동안 보고 겪은 밀양이 서울촌놈이던 나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지팡이를 짚고 산을 오르는 할머니 세 분을 막기 위해 경찰 수 백 명이 마을의 모든 길을 틀어막았다. 길을 왜 막느냐고, 저 위에서 대체 무슨 공사가 얼마나 어떻게 진행되고 있냐고 물어도 경찰은 묵묵부답이었다. 한전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지만 한전직원은 코빼기도 보지 못했다. 밀양에서 경찰은 마을 주민의 정당한 질문을 막고, 한전의 송전탑 공사를 안전하게 진행시키는 용역이었다. 충직한 용역덕분에 한전은 아무 걱정 없이 제 할 일만 했다.




<사진/김우창>



밀양을 바라보는 언론의 태도도 마찬가지였다. 송전탑 공사를 방해하는 밀양주민들 때문에 전력공급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며 ‘밀양할매’들을 전력대란의 주범으로 몰았다. 그러나 진실은 따로 있었다. 신고리 3호기는 UAE 원전의 모델로 원전 수출 당시 신고리 3호기를 2015년 9월까지 가동해 안전성을 입증한다는 조건을 달았는데, 이를 지키지 못하면 페널티를 물기로 한 것이다. 전력대란의 주범은 어느새 언론에서 사라지고 ‘밀양할매’들은 수출성공과 국익을 저해하는 이기적인 집단으로 덧칠됐다. 이렇듯 거짓과 속임수가 난무했지만 송전탑 공사는 계속되었다. 2014년 6월 11일 한전은 경찰과 공무원 3000여 명을 앞세워 ‘그저 평화롭게 살고 싶다’고 외치던 할매들의 바람을 끝내 짓밟았다.



할매들은 사람들 앞에서 송전탑 이야기만을 하지 않는다. 송전탑 공사로 인해 살기 좋았던 마을과 논밭이 파괴되고 가족 같았던 주민들이 분열된 이야기를 하면서도 ‘탈핵’을 더욱 힘주어 말했다. 처음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송전탑 공사의 부당성과 폭력성만을 설명하면 될 텐데, 왜 저런 이야기까지 하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그만큼 나에게 있어서 핵발전소는 송전탑과 별개의 사안이었다. 그러나 할매들이 옳았다. 여기에선 보이지 않는 고리의 핵발전소가 밀양의 송전탑과 이어져 있었던 것이다. 밀양과 청도를 지나는 송전탑이 신고리 3호기에서 생산한 전기를 북경남변전소까지 실어 나르는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의 희생 없이는 지속될 수 없는 그런 구조 속에서 당신과 내가 살고 있다. 결국 밀양과 청도의 할매들은 희생양이 되었다. 정부와 한전은 신고리 3호기의 수출성공과 경제성장을 위해 할매들의 희생을 당연한 것처럼 말했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 국가의 발전을 위해 꼴짝에 사는 노인들의 희생을 누군가 그렇게 불렀다.





<사진/김우창>



할매들의 희생으로 세워진 송전탑과 신고리 3호기 발전소. 그곳을 2015년 3월 25일 탈탈원정대의 세 번째 기행 때 보고 왔다. 함께 갔던 동래할머니는 신고리 3호기와 연결된 송전탑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중에서도 신고리 3호기에서 시작되어 밀양과 청도를 지나 북경남 변전소로 가는 161개 송전탑 중 1번 송전탑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었다. 할머니에게 신고리 발전소를 직접 보니 어떠냐고 여쭤봤다. “화가 날 줄 알았지. 천불이 날 줄 알았어. 저 신고리 3호기 때문에 우리가 지난 10년을 어떻게 살아왔는데... 근데 화가 나기보단 허무해. 밀양을 지나는 송전탑을 우리만 막는다고 해서 막아질 일이 아니었잖아. 고리에선 핵발전소가 이렇게 늘어나고 있는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기운을 잃지 않는 동래할머니의 입에서 허무란 단어가 나와서 놀랐다. 그러나 할머니가 느낀 허무는 패배감이나 무기력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 큰 싸움을 준비하는 사람의 결연한 태도처럼 느껴졌다. 동래할머니는 “송전탑뿐만 아니라 핵발전소를 막아야 후손에게 덜 부끄러울 것 같아. 지금까지는 탈핵을 별 생각 없이 외쳤는데, 앞으로는 더 열심히 싸워야 될 것 같네.”라고 하셨다.


그날 우리가 보고 온 신고리 3호기의 운영허가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밀양에서 송전탑 공사가 지연되면 전력공급에 차질이 생긴다는 이유로 공권력을 투입해 공사를 강행했지만 신고리 3호기는 지금도 돌아가지 않는다. 지난 10년 동안 대화할 시간이 있었음에도 백지화, 지중화를 요구하는 밀양의 요구를 돈과 시간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무시했다. 사람의 목숨보다 더 귀한 것이 어디 있는가. 인간의 풍요로운 삶을 위해 생산하는 전기가 오히려 인간을 죽이고 있는데 말이다.


2015년 4월 23일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신고리 3호기 운영허가를 위해 연 회의에 할매들과 함께 방청했다. 그날 원안위는 ‘일부의 제품에 문제가 있어서 교체한 후에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몇몇의 원안위 의원들은 “먼저 운영허가를 통과시키고 나중에 교체해도 되지 않냐”고 말하기까지 했다. 누군가의 삶을 망가뜨리는 송전탑, 발전소 등 중요한 전력정책을 심의하고 결정하는 전문가들의 수준이 그랬다. 그런 전문가에게 우리의 미래를 맡겨서는 안 되는 또 하나의 이유를 확신한 순간이었다. 10년간 싸워왔지만 앞으로도 할매들과 해야 할 일이 참 많을 것 같다. 나를 비롯한 밀양 할매들의 싸움은 앞으로도 길고 힘들 것이다. 그러나 그 싸움은 나만을 위한 투쟁이 아니다. 탈핵, 탈송전탑이라는 당신과 우리 모두를 위한 이유 있는 싸움이다. 지금까지도 많은 관심과 응원을 주었던 당신이지만, 앞으로도 변함없는 지지와 연대를 부탁드린다. 탈(핵) 탈(송전탑) 원정대의 여정은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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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마을소식

나는 왜 휴가를 삼평리로 왔나

 -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박기홍(성서공단노동조합 부위원장)




<사진/박기홍>


휴가로 은둔(?) 하기 좋은 평화센터로 찾아간 다음 날 쌍둥이네 복숭아 농장으로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바쁜 농사철에 한 숨 돌릴 참이면 뻔히 보이는 괴물 같은 송전탑에 부아가 치미는데, 그것도 모자라 송전탑투쟁 중에 정당한 항의방문 건이 주거침입으로 둔갑해서 이은주 전 부녀회장이 검찰 조사를 받는 날이었기에 아니 갈 수가 없었다. 검찰 조사를 받고 온 이은주 전 부녀회장은 아무 일 아닌 것 같이 참을 내놓으시면서 검찰조사의 부당성을 이야기하다 울화가 터져 검사 앞에 울고 말았다고... 


쌍둥이네 복숭아 농장 빈대표는 송전탑 투쟁 때문에 복숭아 농사를 제대로 지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서툰 초보농사꾼을 지나고 야심차게 지어볼 참에 송전탑 반대 투쟁에서 뛰어들게 되면서 주위에서 품앗이가 없었다면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했다. 그러면서 빈대표는 올해는 내 손으로 농사를 잘 짓겠다는 것인데 어김없이 한전의 고소 남발로 주민들을 괴롭히고 있다고 했다. 봉숭아 적과처럼 검찰조사쯤이야 일상이 되어 버린 삼평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적과는 나뭇가지에 너무 많이 달린 어린 열매는 속아내는 일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머리는 굳어지고, 몸은 안 움직이게 되고, 입만 살아 있는 것 같은 나에게는 이번 휴가는 적과와도 같았다. 내가 좋아서 선택했고 그 열정으로 살아왔으며 근데 돌아보니 외롭더라. 의지와 열정만으로 될 것 같았는데 부족하고 나약했더라. 때도 묻고, 경직성은 꼰대로 똬리를 틀고 있더라. 이를 속아내고자 휴가를 떠났고 삼평리를 찾았다.


지난 14년 7월 21일 한전의 기습침탈로 치열하고 비타협적인 투쟁을 보았다. 그 뜨거웠던 여름을 잊을 수가 없다. 특히 상주하면서 하루하루 전투를 느끈히 치러낸 활동가들과 지역투쟁으로 확대해서 지역연대 투쟁의 모범으로 자리매김했다고 자부하고 있다. 


대책위가 결성되었던 평화콘서트 그날의 감막걸리와 풍성하게 준비된 음식에 반했고, 농성장 당번날에 함께 하지 못해 미안했고, 재기발랄하고 상상력이 넘치는 활동가들을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고, 오늘 이렇게 내 집처럼 편안하게 찾아와 놀고, 먹고, 쉴 수 있는 휴가를 이곳에서 맞이할 수 있어서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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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마을소식


2015 생명평화의 초록농활-대구경북 봄농활대 삼평리 다녀오다



민뎅(평화캠프 대구지부 사무처장)




5월 23일부터 25일 2박3일 동안 생명평화의 초록농활! 대구경북지역 참가자는 청도 각북면 삼평리로 봄농활을 다녀왔다. 사실 여행을 갈까, 전부터 이 연휴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나도 봄농활 일정에 함께하게 되었다. 10명의 농활대가 삼평리를 찾았다. 제집 드나들 듯 하던 이들도 꽤 오랜만에 찾아 추억 더듬는 시간이 되기도 했고, 이번이 처음이거나 아직 낯설거나 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번 10명의 사람들은 바로 전 주말엔 모두 잘못된 세상을 바꾸기 위해 기꺼이 용기 내 맞섰던 이들을 만나고 지금의 우리를 생각하기 위한 2015광주역사기행도 함께 다녀온 이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모여 함께 농촌활동을 하고, 송전탑과 삼평리에 대해 나누니 모든 것은 정말 연결되어 이렇게 우리를 또 잇고 이어지게 하는가 싶어 불끈! 해졌다. 



  <사진/민뎅>


  23일 오전 10시에 삼평리 농성장에 도착한 초록농활대는 서로 인사를 나누고, 서로 평등한 관계를 위해 성평등 교육과 성평등 내규에 대해 나누었다. 그러한 연장으로 서로가 희망하는 호칭으로 서로를 부르고, 존댓말을 사용키로 했다. 다양한 매력의 호칭들.. 흰수염, 진구, 매실, 개미, 둘기, 민뎅, 해달, 토끼, 카카오, 영구^^ 그 후 삼평리 미디어팀에서 만든 영상을 보고 삼평리 투쟁을 끈질기고 강하게 이어오신 주민 이은주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상을 보고, 이은주 부녀회장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가가 붉어지고, 몸이 뜨거워졌다. 치열한, 이라고 설명하기엔 모자라지만 그러했던 지난 여름날의 삼평리가 머릿속에 펼쳐졌다. 달궈진(??) 상태로^^ 두 곳으로 나뉘어 복숭아 적과 작업을 했다. 청포도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다양한 크기의 복숭아 열매들 중 상품 가치를 키울 수 있게 정리하는 작업이었는데, 한 나무에 정말 많은 열매들이 열리고, 정말 많은 열매들이 버려져야 한다는 것에 이 작업을 처음 해보는 농활대는 크게 놀랐고, 이른바 ‘복숭권’이라고 떨어지는 복숭아의 생존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며 결국 상품이 될 소수의 복숭아를 위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상품, 가치 등에 대해서도 잠시 이야기를 나누며 또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이렇게 적과 작업은 23일 오후, 24일 오전과 오후, 25일 오전까지 이어져 총 4차례 농촌활동을 함께 했다. 처음 해보는 작업들에 모두 식사 시간만 되면 녹초가 됐지만, 정해진 식사 당번과 교양 세미나 등을 간과하지 않고 함께, 했다. 




<사진/민뎅>


  

  적과 작업을 한 농촌활동 외에 우리가 이번 봄농활에서 한 것들은 첫 날의 성평등 교육 외 두 번의 교양 시간이 있었다. 첫 번째는 탈핵/탈송전탑에 대한 것이었고, 두 번째는 최저임금 1만원에 대한 것이었다. 밀양에 이어 청도에서 탈핵활동가로 함께 연대해온 해달(박인화)이 본인의 투쟁 경험과 함께 이야기해 와닿고 이해하기 쉬웠고, 알바노조 대구지부의 지부장인 영구(김영교)의 “선택 가능”한 삶에 대한 이야기와 최저임금 1만원은 무엇도 사실 선택 가능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져버린 지금 사회에 대한 고민과 그것을 바꿔나가기 위한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단순히 어느 농촌에 농사일을 도우러 온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왜 삼평리에 왔는지- 함께 고민하고 공유하는 시간, 그리고 우리가 생명보다 이윤이 먼저인 지금의 이 문제 많은 사회를 살아간다는 것과 그 안에서 이야기해야할 것들에 대해 나누는 시간... 미흡만 부분들이 있었겠지만, 모든 것이 해소될 수도 없겠지만 이 시간들은 그런 의미의 시간들로 기억된다. 



  그 치열한 삼평리 투쟁의 연대를 기억한다. 한 평생 살아온 마을에서 어느 날 이상한 사람들이 되어버렸을 너무나 작은 수의 할매들을 기억한다. 비록 송전탑들이 세워졌지만, 폭력 속에 세워진 그 괴물과 같은 송전탑에, 기만적인 정부에, 부당한 권력과 자본에 평화의 이름으로 기꺼이 파산을 선고하고,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목소리 내고 거리에 서는 것들이 삼평리를 잊지 않고 삼평리를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각각의 나‧들로서 삼평리를 잊지 않고 이야기해나가는 것, 삼평리만의 문제가 아님을 우리 모두가 알고 껴안은 것. 그것들이 수없이 많은 삼평리들을 잇고 이어갈 평화의 길임을 의심치 않는다. 투쟁도, 연대도, 그리고 우리의 삶도 여전히, 계속될 테니까. “삼평리에 평화를”. 우리 모두의 삶에, 평화를. 



<사진/민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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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마을소식

누구를 위한 주민복지회관인가!

"뭐가 후손들을 위한 길이고!"



변홍철(청도345kV송전탑반대공동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



며칠 전 청도 삼평리 마을회관에서는 소위 '(한전과의) 합의 추진위원'들과 송전탑 반대 주민들(주로 할매들)이 마주 앉았다. 


한전과 '합의 추진위원'들(현직 이장이 포함된 이들은 자신들이 마을 주민 전체를 대의한다고 주장해옴) 사이에 작년 4월 체결되었다고 하는 '합의'에 따라 '주민복지회관' 건립을 추진하고, 이 공사 추진 공정에 따라 한전으로부터 분할하여 '지원금'을 받기로 했으니, 송전탑 반대 주민들도 이에 협조해 달라는 취지의 메시지를 다시 한번 전달하기 위해 이장이 소집한 자리였다. 


한전이 삼평리 주민복지회관 건립에 지원하기로 한 금액은 총 5억 원으로, 밀양(765kV) 구간과는 달리 개별(가구별) 보상이 없는 청도(345kV) 구간에서는 유일하게 한전의 송전탑 공사에 대한 주민 동의(합의)를 확인하고 이에 대해 마을 차원으로 보상하는 공식적인 돈인 셈이다. 이른바 '마을발전기금'의 형식이다. 


그러나 작년 말부터 삼평리 송전탑 반대 주민들과 대책위는 일관되게 주민복지회관 건립 반대의 뜻을 밝혀 왔다. 한전과의 싸움이 자칫 주민들 사이의 갈등으로 전환되는 부담이 없지는 않으나, 적법한 절차를 밟지도 않고 또 주민 동의를 얻지 못한 부당하고 불법적인 송전탑 공사에 대한 면죄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진/변홍철>


또 고령의 주민들이 대부분인 이 동네에서, 이미 있는 마을회관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또 복지회관이라는 이름의 건물을 작은 동네 안에 세우는 것은 여러 의미에서 불합리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쪽에서는 2억 2천만 원의 이행강제금 집행문부여 민사소송으로 송전탑 반대 주민들에게 금전적으로 압박하고 치졸한 보복을 하려고 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주민복지회관 건립 지원이라는 알량한 명목으로 마을에 돈을 지원하는 것은 결국 주민들간의 갈등과 반목만을 심화시켜, 주민간의 화해와 치유, 공동체 회복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처사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한전은 비열하고 기만적이며, 이런 한심한 지원금에 눈이 어두워 자존심을 팔아먹는 '합의 추진위원'들의 행태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이미 한전 지원금으로 부지는 구입해 놨고, 한전한테서 나머지 3억을 더 받기 위해서는 공사를 추진해야 한다. 후손을 생각해 달라"고 어느 추진위원이 할매들한테 요청한 모양이다. 


우리 할매들의 대답. "비록 송전탑이 섰지만, 그래도 우리가 한전한테 치사하게 돈 받았다고 역사에 남기는 것보다는, 송전탑 끝까지 반대하고 동네 지킬라카다가, 한전 지원금도 당당하이 거부했다, 이런 자존심을 남기 주는 기 진짜로 후손들 위한 길 아이가! 그거 한전 돈 몇푼에 마을 팔아묵었다 카는 소리 듣고 싶나!"


밀양에서 개별 보상을 거부하고 있는 세대가 아직도 225세대나 된다. 그리고 청도 삼평리에는 할매들의 이같은 뜻에 밀려 사실상 주민복지회관 건립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것은 한전의 송전탑 공사가 주민 동의를 제대로 받지 못한 부당한 공사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경찰의 폭력 없이는, 또 마을을 분열시키고 주민들을 매수한 검은 돈이 아니었다면, 단 한발짝도 진척될 수 없었던 엉터리 공사였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현재 삼평리 내에는 주민복지회관 건립을 막음으로써, 한전 송전탑 공사의 부당함을 끝끝내 밝혀내고, 저 송전탑을 반드시 뽑아내겠다는 주민들의 투쟁이 조용히, 그러나 끈질기게 진행되고 있다. 


아직도 건재한 농성장이, 그리고 하루도 빠짐 없이 그 농성장에 나와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꽃을 피우는 할매들의 '농성'이 그 조용한 투쟁을 웅변하고 있다. 


우리의 투쟁은 계속된다.

우리의 삶도 계속된다. 

삼평리에 평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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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04. 주요일정 


탈탈원정대 북콘서트 in 대구 


밀양 할매 할배들이 발로 쓴 대한민국 '나쁜 전기'보고서 탈핵탈송전탑원정대 북콘서트가 청도 대책위 주관으로 대구에서 열립니다^^ 물론 삼평리 할매들도 함께 하십니다.


영상마당, 낭독마당, 대화마당, 축하마당, 전시마당 등 다양한 볼거리와 들을거리 감동과 재미가 가득한 북콘서트가 될 것으로 예상되니 많은 참석 부탁드립니다!


일시: 5월 28일(목) 오후7시 30분
장소: 소극장 함세상(남구 명덕로 98-2, 1층 소극장 함세상 / 대명동 계대 정문에서 도보5분 거리) 
주최: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주관: 청도345kV송전탑반대공동대책위
후원: 도서출판한티재
문의: 010.4444.1210



10년의 저항, 가슴 아픈 패배.
그러나, 밀양의 할매 할배들은 길을 떠났다.
2,900킬로미터의 여정 위에서 눈물을 타고 흐르는
이 나라 나쁜 전기의 실체를 똑똑히 보았다.

 

20153월 한 달 동안 밀양 할매 할배들이 전국의 핵발전소와 송전탑 지역을 무려 2,900km에 걸쳐 누볐다.

그 여정을 이계삼 밀양대책위 사무국장이 기록하고, 이헌석 대표가 친절하게 해설하여 우리나라 에너지 문제를 한눈에, 그리고 쉽고 재미있게 들여다볼 수 있도록 정리하였다. 아울러 노순택 작가를 비롯한 사진작가들이 현장을 시적인 사진으로 담았고, 독립 다큐 감독들이 영상으로 찍었다.

밀양 송전탑 투쟁은 이제 무언가 후손들을 위해 보람 있고 소중한 역할을 하고 싶어 하는 할매 할배들의 원력(願力)으로 서서히 탈핵 탈송전탑 투쟁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 책의 발간은 그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이다. 이 책과 영상과 사진을 들고 밀양 할매 할배들이 전국을 누비며 탈핵 탈송전탑의 메시지를 전국으로 알리게 될 것이다


책 소개 

송전탑을 따라가니 그 끝에는 '핵발전소'가 있었다 

뜻 깊은 책 한 권이 세상에 나왔다. 탈핵 탈송전탑 원정대, 줄여서 탈탈 원정대로 부른다.

이제는 기자 한 사람 없고, 연대 활동가들도 드문드문 찾는 밀양. 하지만 완성된 송전선으로 송전하는 것에 항의하기 위해 밀양 주민들은 철탑 선하지에서 농성장을 꾸려 2014년 겨울도 그곳에서 지냈다. 매일 아침 밀양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20155월 현재도 상동면 고답마을 115번 철탑 선하지에 농성장이 유지되고 있다. 그리고 한전의 보상금을 거부하고 버티는 225세대 주민들이 유형무형의 압박에 시달리는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 밀양은 '사법처리 국면'을 맞고 있다. 거의 매주 재판이 벌어진다. 65명의 주민과 연대 활동가들이 80여 건의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국외자의 시선에서 보자면 '완연한 퇴조기'에 들어선 밀양 송전탑 반대 싸움. 그러나 밀양 주민들은 지난 10년간 철탑만 바라보고 살았는데, 철탑을 따라가니 그 끝에는 '핵발전소'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렇게 탈핵탈송전탑을 만나게 되었다.

 

'탈핵 탈송전탑 투쟁으로 나아가고 있는 밀양 송전탑 투쟁

20153월 한 달 내내, 마음을 모은 여러 사람들이 밀양 할매 할배들과 함께 전국을 돌았다. 이른바 '탈핵 탈송전탑 원정대'. 이계삼 사무국장은 여정이 이어지는 봉고차 안에서, 어르신들이 잠든 숙소에서,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며 어르신들이 흘려놓은 이야기의 파편들과, 보고 듣고 느낀 이야기들을 써내려갔다.

그렇게 나온 이 책은, 거의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이 나라 핵발전소 주변 지역의 실상과 이력, 송전탑 지역 주민들의 가슴 아픈 삶의 축도를 그려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제 무언가 이 세상을 위해 보람 있는 일로 당신의 여생을 보내고자 하는 밀양 어르신들의 원력(願力)을 담아, 밀양 송전탑 투쟁이 '탈핵 탈송전탑 투쟁'으로 나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 

밀양 할매 할배들

밀양 할매 할배들2005년부터 이른바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에 매진해 온 밀양시 송전탑 경과지 4개면 주민들을 말한다. 10년의 투쟁 끝에 공권력의 힘으로 철탑이 완공되고, 시험 송전까지 이루어졌으나, 밀양의 진실과 정의가 바로 설 때까지 싸울 각오로 225세대가 합의금 수령을 거부하며 버티고 있다.

10년의 싸움 동안 두 분이 세상을 버리고, 수없는 사법 처리와 병원 후송, 마을 공동체의 분열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버텨왔지만, 또한 나눔과 연대를 실천하는 어르신 투사로 우리 사회 양심적인 시민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기록

이계삼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사무국장)

 

감수·해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

 

사진

노순택 이우기 정택용 최형락

 

영상

미디어로 행동하라 in 밀양프로젝트팀 : 강세진 류미례 박일헌 박지선 이강길 이경희 조현나

 

탈핵 탈송전탑 기행 참가자

한옥순 이남우 김길곤 송루시아 김영자 김영순 조원규 김종천 정임출 서종범 김수암 유은희 고준길 구미현 김필기 김옥희 (주민) 김우창 김태철 남어진 (밀양대책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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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03. 법적대응 

“재판도 투쟁, 의연하게 이겨내고 공동으로 대응”
삼평리 투쟁 ‘기소자 총회’ 열려


변홍철 (청도 345kV 송전탑 반대 공동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 


지난 4월 28일, 대구의 소셜마켓에서는 좀 특이한 모임이 열렸다. ‘기소자 총회’라는 이름으로 열린 이 자리에는 그동안 삼평리 투쟁 과정에서 업무방해, 집시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주민과 활동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지금까지 삼평리 투쟁 과정에서 형사 사건으로 기소된 사람들은 모두 24명. 이번 모임은 그동안 진행된 재판 과정을 공유하고, 공동대응의 원칙을 재확인하고 결의하는 자리. 

“한전 직원들 도시락 반입 과정에서 실랑이를 벌이다 손에 김칫국물이 묻었는데, 그게 경찰 옷에 묻었다고 ‘재물손괴’래요. 판사도 어이가 없었는지, 그 옷은 빨면 되는 거 아니냐 하고 검사한테 물었어요.”

“현장에서 경찰들과 몸싸움하다가 체포되었는데, 정작 공소장 내용에는 체포 당시 사유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 적혀 있어요. 경찰들이 채증한 사진들 중에서 내 손가락 하나가 경찰 목에 닿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을 증거로 내밀고는, 경찰이 손가락에 찔려서 호흡이 곤란했다고 증언했다는 거예요. 그것도 그 자리에서 바로 그런 게 아니라, 한참 뒤에. 내가 엄청난 무공을 가진 사람인가 봐요.” 


돌아가면서 재판 과정을 이야기하는 동안, 여러 차례 웃음이 터지고, 어이없다는 탄식이 쏟아졌다. 그만큼 경찰과 검찰의 수사와 기소내용 중에는 무리하게 짜맞춘 내용들이 많다. 정당한 항의를 ‘불법’이라는 이름으로 옭아매기 위한 사법당국의 억지 논리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지금까지 모두 10명의 연대자들이 50만원에서 500만원까지의 벌금형 또는 실형을 1심에서 선고받았다. 그중 8명은 선고 결과에 불복하여 항소하거나 검찰이 항소함으로써 2심을 준비중이며, 2명은 벌금형이 확정되었다. 나머지 14명은 1심 재판이 계속 진행중이다. 워낙 사건들이 많다 보니, 앞으로 추가로 기소되는 경우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주민들과 대책위가 감당해야 할 벌금의 규모는 상당할 것으로 예상한다. 

또 이와 별도로, 한전이 민사소송으로 주민과 활동가들에게 받아내겠다고 하는 이행강제금이 무려 2억 2천만 원에 이른다. 이에 대해서는 민사 재판이 진행중이며, 터무니없는 한전의 주장에 맞서 법정에서 끈기있게 다투고 있다. 얼마 전 조정을 거쳐 재판부가 4천만 원의 ‘합의 권고 결정’을 한 바 있으나, 주민과 대책위는 한전의 소송이 “금전으로 정당한 주민 투쟁을 압박함으로써 타지역 투쟁에 본보기를 보이려는 비겁하고 치졸한 수단”으로 규정, 이를 거부하고 이의신청을 내었다. 

한편 ‘삼평리 법률기금 마련을 위한 후원의 밤’이 지난 3월 6일 전국의 여러 연대시민들의 도움으로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또 이 행사를 전후하여 대구경북의 기독교계는 ‘고난 받는 이웃을 위한 평화음악회’를 열었고, 지역의 미술작가들은 ‘후원전시회’를 여는 등 각계의 참여와 연대가 잇따랐다. 

‘기소자 총회’에 모인 주민과 활동가들은 “삼평리 투쟁은 참으로 값진 연대의 경험이었다. 국가폭력에 맞서 정의와 민주주의, 마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함께 투쟁한 것이기 때문에, 재판까지 받아야 하는 지금 상황이 다소 억울하고 번거롭기도 하지만, 그러나 조금의 후회도 없다. 함께 싸워온 것처럼 앞으로 법적 대응도 함께 헤쳐나가고 그 책임도 연대하여 지도록 하자. 최선의 노력을 한 다음 결과가 나오면, 그것이 개인에게 부담이나 피해로 돌아가지 않도록 공동으로 대응하자. 또, 비록 힘겨운 재판이지만, 다퉈야 할 쟁점들을 충분히 다투고 진실을 밝힐 수 있도록, 필요한 경우 항소와 상고 등을 통해 끝까지 투쟁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참석자 중에는 앞으로 벌금이 부과될 경우, 노역형을 통해 공권력의 부당함에 대해 불복하고 항의하는 투쟁을 하겠다는 결의를 밝힌 젊은 활동가도 있었다. 주민 동의를 받지 못한 채 경찰의 ‘폭력’과 한전의 ‘검은 돈’으로 밀어붙인 송전탑 공사에 대한 이들의 분노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Posted by 이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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