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평화캠프 대구지부 초록농활
청도 삼평리 오다!








당초 2주에 걸쳐 방문하고자 했던 계획대로는 되지 않았지만,
또 많은 인원이 함께 하지 않아 아쉬움도 있었지만,
이번 초록농활로 방문한 청도 일정은 여러모로 좋았다.
우선 함께한 친구들이 청도 삼평리 송전탑에 상황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고,
처음 방문이었던 터라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나름의 의미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청도 삼평리 같은 경우는 삼평리 일대를 상대로 농활을 진행하는 계획이기 보다는
애당초 송전탑 농성장에 연대의 힘을 실어주고 싶음이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농활거리는 적은 편이었다.
날마다 천막을 지키며 한전과 정부를 상대로 농성을 하고 계시는 할머니들과 담소를 나누고,
편히 쉬실 수 있도록 천막 지킴이를 한다는 데 삼평리의 경우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26일 금요일 오후 평화캠프 사무실에 모여 간단한 장보기를 한 후 삼평리로 갔다.
장보기한 음식으로 간단하지만, 저녁식사를 준비하여 할머니들과 함께 도란도란 저녁을 먹고
금요일을 보냈다. 세 명의 남자 활동가는 천막에서 잠을 자고, 세 명의 여성 활동가는
조합장 아부지네서 잤는데, 조합장 아부지와 나누는 이야기는 언제나 허허허- 큰 웃음이다. 하핫-
27일 토요일 오전 아침을 해 먹고 저녁 행사를 위한 준비들을 하고,
두 팀으로 나뉘어 고추 밭 일손과 장작 준비를 했다. 고작 그 조금 했는데도 쪼그려 앉아
그 뜨거운 햇볕 아래서 고추 작업을 하니 빙글빙글 돌았다
(다음날 다리가 너무 아팠던 저질 체력들이었던 흙흙).
할머니들과 점심을 먹고 청도 시가지로 나가 교육혁명대장정팀과 합류하여
간단하게 청도 상황을 공유하고 청도 시가지를 걸으며 청도 도민들에게 선전전을 진행했다.
선전전 내용은 교육혁명과 송전탑 상황 알리기였다.
걸으며 유인물을 나눠드리는데 삼평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많은 분들이 모르셔서 놀랐다. 대장정팀 쌤 이야기도 들으며 이때 여러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어떻게 ‘우리’의 일이라고 응할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어려운 말 말고 모두 고개 끄덕이며 “응응”할 수 있는 그런 거.. 또 고민에 빠졌었다.
선전전 후 삼평리로 모두 함께 돌아와 할머니들의 추어탕으로 2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함께 식사를 했다. 그 후 농성 천막 옆 공터에서 삼평리 송전탑 대책위에서 준비해주셔서
<송전탑>과 <삼평리에 평화를>이란 다큐멘터리 영화를 함께 봤다.
<송전탑>은 이동렬 감독이 작년부터 삼평리에서 살며 준비한 영화인데
작년에 처음 할머니들을 뵈러 왔을 때의 모습과 용역들에게 밀쳐지는 모습,
시간과 사건별로 영상이 지나가는데, 그 짧은 영상을 보면서도 회상이 되며 울컥대는 시간이었다.
영화 상영이 끝나고 팀 별로 소감을 이야기한 후 천막에서 뒤풀이 자리가 이어졌고,
농활팀은 뒷정리 후 천막 지킴이로 천막에서 취침을 하고 일요일 오전 대구로 돌아왔다.
이곳은 그저 자꾸 더 먹으라고 웃으며 건네시는 할매들이 계실 뿐이다.
그런데 그런 백발의 할매들이 투쟁이란 깃발이 나부끼는 농성장에 계신다.
이건 이상하다. 할매들이 이런 곳에 있어야 하는 것이 나는 이상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너무 모른다. 영상에서 한전측은 ‘적법한 허가’를 이야기 했다.
언제부턴가 나는 그 ‘합법’이란 것에 진저리가 난다.
법적으로, 법적으로‘만’ 문제가 없는 깔끔한 폭력들이 얼마나 많은 세상이던가.
법적으로 문제가 없기 때문에 생계도, 삶도, 목숨도 보지 않는다.
법만 보고 사람을 보지 않는 투성의 세상이다.
어느 날, ‘우리’도 그러할 수 있다.
‘돈’의 이유로 ‘사람’을 포기하고 있는 이 나라가, 이 사회가 어느 날 갑자기 ‘나’를 포기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나’라는 존재들은 ‘우리’ 누구나이다.
보듬고 살자. 그런 우리, 그런 인식, 그런 연대, 그런 마음이면 좋겠다, 고
이번 청도에서의 시간에서도 어김없이 아팠고, 슬펐고, 기운내자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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